"왜 식욕은 안 줄어들까"...인슐린 저항성 다음은 '렙틴 저항성'?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렙틴과 그렐린의 복잡한 메커니즘에 인슐린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인슐린이 도파민 회로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그렐린과 렙틴도 도파민 회로에 영향을 끼친다. 그렐린은 도파민 회로에 있는 수용체와 결합하여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게 하고, 렙틴은 도파민 분비를 감소시켜 식탐이나 약물중독과 같은 도파민 의존성 행동을 약화시킨다.
한 연구에 의하면 렙틴 분비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음식 이미지를 보여주면 복측피개영역이 과잉 활성화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렙틴을 주입하면 이런 반응이 줄어들고 음식에 대한 욕구도 줄어든다.
렙틴과 그렐린, 그리고 인슐린은 도파민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거나 지나치게 적게 분비되는 것을 막는 보상시스템의 일부일 수 있다. 또한 도파민 회로가 발달한 중뇌의 복측피개영역과 시상하부, 뇌간은 신호전달 기능을 가진 외곽 호르몬들이 모두 모여 통합작용을 하는 곳일 수 있다. 이 통합작용 메커니즘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비만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담배나 약물중독의 해결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식욕 관리 시스템이 결국 중독을 관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식욕억제 호르몬 렙틴은 지방세포에서 분비된다. 당연히 지방이 많을수록 분비량이 많아진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비만인 사람들은 렙틴이 더 많이 분비될 텐데 왜 식욕을 자제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바로 '렙틴 저항성'이다. 지방세포는 렙틴을 충분히 분비하는데 시상하부의 궁상핵에 있는 수용체가 렙틴과 결합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1995년 미국 보스턴의 베스이스라엘 병원 내분비학과 연구팀이 이 개념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이들은 쥐에게 엄청난 고지방 식이요법을 실시하여 비만 쥐를 만들어냈다. 쥐들은 지방이 증가할수록 더 많은 렙틴을 분비했다. 하지만 쥐들은 전혀 먹는 양을 줄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뚱뚱해졌다. 렙틴이 증가해도 식욕이 그대로라는 건, 어떤 이유에서인지 뇌에서 렙틴이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현상에 '렙틴 저항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몇 년 뒤 또 다른 연구팀이 비만인 사람들의 렙틴 수치를 조사해보니 정상 체중의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렙틴 유전자가 변형된 비만 쥐에게 렙틴을 투여하면 식욕이 억제되지만 이미 렙틴 수치가 높은 비만인 사람들에게 렙틴을 투여하는 것은 식욕 감퇴나 체중 감량 효과가 거의 없었다.
이러한 결과들을 통해 비만이 되어 렙틴이 너무 많이 분비되면 내성이 생긴다는 '렙틴 저항성'의 개념이 확립되었다. 렙틴 저항성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인슐린 저항성'을 떠올리게 한다. 인슐린 저항성도 췌장에서는 인슐린을 충분히 분비하는데 수용체나 간, 근육 등의 세포가 이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많이 먹을수록 더 많이 분비되고 효과가 없을수록 췌장이 죽을 힘을 다해 더 많이 만들어내지만, 그럴수록 저항성이 더 심해지는 것도 똑같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비만과 렙틴 수치의 상승, 렙틴 저항성과 인슐린 저항성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0년 파키스탄 연구팀은 BMI가 25 이상인 비만 그룹과 BMI가 25 이하인 정상~과체중 그룹의 혈액을 검사하여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비만 그룹은 렙틴 수치가 정상~과체중 그룹에 비해 5.6배나 높았다. 인슐린 저항성을 나타내는 공복혈장 인슐린 수치도 비만 그룹이 1.2배 더 높았다.
문제는 비만으로 인한 높은 렙틴 수치가 인슐린 저항성을 더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중에는 공복이 오래 지속될 때 지방을 연료로 사용하도록 촉진하는 아디포넥틴이 있다. 아디포넥틴은 항염 효과가 있어 여러 염증 관련 인자들의 발현을 억제해준다. 그런데 복부 비만이 심해지면 아디포넥틴의 분비량이 줄어들고 대신 렙틴의 분비가 늘어난다.
렙틴은 오히려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발현을 촉진하여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킨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는 비만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비만이 아니라면 렙틴 저항성이 생기지 않을 것이고 렙틴 저항성이 생기지 않는다면 인슐린 저항성이 악화되어 당뇨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 고유의 기능을 잃지 않으려면 늘 식사량에 신경을 쓰고 적당히 포만감을 느끼면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한다.
당뇨는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질환이다. 평생을 식욕과 혈당 사이에서 줄다리기해야 하고 합병증이 발생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살이 찌기 시작하는 40~50대부터 체질량을 잘 관리하여 당뇨의 위험을 낮춘다면 노후의 삶의 질이 훨씬 좋아질 것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