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내 딸이 왜 죽어야 하나요" 태움간호사 유족의 절규, 누가 응답했나 [낮은 곳의 기록자]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광화문서 만난 태움 피해 간호사 유족들]
"버티지 말고, 힘들면 말해달라" 후배들 걱정한 유족
"강력한 처벌 없어, 오늘까지도 반복" 정부에 호소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나도_너였다_2026 태움 사망 간호사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사진=한승곤 기자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나도_너였다_2026 태움 사망 간호사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사진=한승곤 기자

태움으로 병원에서 일하다 숨진 간호사와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이름이 다시 광화문에서 불렸습니다. 태움은 개인 간 갈등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병원 조직문화와 인력 구조의 문제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유족은 자신의 딸을 살려내라며 오열했습니다. 태움 사망 간호사 추모문화제 현장에서 유족과 간호사, 간호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파이낸셜뉴스] "언제까지 간호사가 죽어야 하나요", "왜 딸 이름이 고인으로 나와야 합니까!"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나도 너였다 2026' 태움 사망 간호사 추모문화제에서 만난 故 강수빈 간호사의 유족은 이렇게 말했다. 이날 추모제는 병원에서 일하다 숨진 간호사와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이름을 함께 부르는 자리였다.

유족은 행사장에 놓인 이름들을 바라보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유족은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는다"며 "정부에서 제발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간호사와 간호학생들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흰 국화꽃을 놓고 숨진 동료들을 추모했다. 행사장에는 '간호사도 사람이다', '살아서 출근하고 살아서 퇴근하자', '의료현장 태움 근절'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이 놓였다.

참가자들은 고 박선욱 간호사와 고 서지윤 간호사, 고 강수빈 간호사, 고 임가현 방사선사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행사장에는 침묵이 흘렀다.

유족은 태움 피해가 반복되는 이유로 낮은 책임 추궁과 처벌 수준을 지적했다. 그는 "강력한 처벌이 없으니까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 구조를 바꾸고 뭘 한다고 해도 처벌이 약하니까 계속 하는 거겠죠"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은 거듭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그는 "강력한 처벌을, 면허 박탈시키는 거…"라며 울분을 토했다. 병원 안에서 괴롭힘이 확인돼도 책임을 분명하게 묻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취지다.

유족은 피해가 시간이 지나며 잊히는 상황도 우려했다. 그는 "그냥 이렇게 묻혀버리면 일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이런 게 제일 안타깝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호사들이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 모여 선배 간호사의 폭언·모욕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뜻하는 이른바 '태움'으로 숨진 동료들을 추모하고, 안전한 간호환경 마련을 촉구했다. 2026.8.22 /사진=뉴스1
간호사들이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 모여 선배 간호사의 폭언·모욕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뜻하는 이른바 '태움'으로 숨진 동료들을 추모하고, 안전한 간호환경 마련을 촉구했다. 2026.8.22 /사진=뉴스1

태움은 병원에서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폭언과 모욕, 따돌림뿐 아니라 과도한 업무를 맡기거나 질문을 막는 행위도 문제로 제기된다. 참가자들은 태움을 선후배 사이의 성격 문제나 개인 간 갈등으로만 다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병동 인력이 부족하면 결원이 생길 때마다 남은 간호사에게 업무가 몰린다. 신규 간호사 교육도 기존 인력이 맡는 경우가 많다. 업무와 교육 부담이 한꺼번에 커지면 간호사 사이의 갈등도 커질 수 있다.

참가자들은 업무량과 인력 배치, 신규 교육체계를 함께 확인하지 않으면 특정 간호사의 행동만 문제 삼는 데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괴롭힘을 개인 사이의 문제로 처리하면 피해자가 일터를 떠나는 방식으로 상황이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의료원에서 근무하며 태움 피해를 알린 간호사는 선임 간호사의 폭언을 견디다 병원을 그만둔 경험을 말했다. 그는 문제를 제기한 간호사가 일터를 떠나는 방식으로 사건이 마무리되면 병원 조직은 같은 문제를 반복할 수 있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관리자 책임도 요구했다. 괴롭힘 신고가 접수됐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지, 신고한 간호사가 근무와 교육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지,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호학생들은 실습 과정에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쉽게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실습 평가와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교육과 무관한 일을 맡거나 부당한 지시를 받아도 문제 제기를 미루게 된다는 설명이다.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나도_너였다_2026 태움 사망 간호사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사진=한승곤 기자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나도_너였다_2026 태움 사망 간호사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사진=한승곤 기자

이 같은 문제 제기 속에 정부는 지난 13일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대한병원협회, 대한간호협회 등 6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보건의료 현장의 직장 내 괴롭힘을 줄이고 병원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협의체를 운영하기로 했다.

정부는 입사 3년 미만 간호사를 대상으로 병원별 특별진단을 실시할 계획이다. 신규 간호사 교육 방식과 조직문화, 교대근무, 인력 부족 실태를 조사하고, 괴롭힘 신고 이후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는지도 확인한다.

진단 결과 문제가 큰 병원에는 조직문화 개선 컨설팅을 권고한다. 병원이 컨설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근로감독으로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간호사 상담과 피해자 지원 절차도 강화할 방침이다.

보건·복지 분야는 직장 내 괴롭힘 경험률과 신고 비율이 높은 업종이다. 2024년 실태조사에서 보건·복지 분야의 직장 내 괴롭힘 경험률은 25%로 전체 업종 가운데 가장 높았다. 2025년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접수 비율도 16%로 업종별 가장 높았다.

태움 문제는 수년 동안 반복돼 왔다. 2018년 고 박선욱 간호사와 2019년 고 서지윤 간호사가 숨진 뒤에도 간호사들은 인력 부족과 수직적인 조직문화, 피해자 보호 절차 부족을 문제로 제기해왔다. 올해 고 강수빈 간호사와 고 임가현 방사선사의 사망 이후에도 같은 요구가 이어졌다.

서울시는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 이후 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병원의 인력 배치와 근무표, 인사·노무체계를 조사했다. 조사에는 간호사 867명이 참여했고, 이 가운데 296명의 설문 응답이 분석됐다. 유족과 동료, 간호부, 노동조합, 서울시 관계자 등 102명에 대한 면접도 진행됐다.

진상대책위원회는 인력 공백을 기존 간호사에게 떠넘기는 방식과 대체인력 부족, 불합리한 근무 배치를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 사이의 갈등만 조정할 것이 아니라 업무량과 인력 배치, 관리자 책임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광화문에 모인 간호사들은 특별진단이 조사 결과를 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병원별 인력 배치와 신규 교육, 신고 이후 피해자 보호 절차가 실제 현장에서 지켜지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요구다.

유족은 이날 "진짜 안타까운 일로만 남지 말고"라며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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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protected]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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