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명 새인생 찾아준 교도관...최정종 경북3교도소 교감[서초동 溫터뷰]
27년 교도관 생활 중
40여명의 출소자 직업 연계
"갈아넣는 인력으론 수용률 감당 못해"
[파이낸셜뉴스] 교도소의 문은 사람을 가두기 위해 닫힌다. 그러나 그 문을 나선 이에게 돌아갈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은, 담장 안이 아니라 담장 밖에서 이뤄진다. 출소하던 날 아침, 갈 곳도 머물 곳도 없어 이내 자취를 감추던 사람들. 그 하루의 공백을 메워 일자리와 잠자리로 이어 준 교도관이 있다. 27년째 교정 현장을 지켜 온 최정종 경북북부제3교도소 교감(사진)이다.
최 교감이 출소자 취업·창업 업무를 맡은 것은 경북북부제1교도소 직업훈련과 시절이다. 교도소는 수용자가 출소 후 자리를 잡도록 취업 교육을 하고, 교육을 받은 이가 중소기업에 취직하면 그 업체에 100만~180만원의 인센티브가 지원된다. 기업으로선 손해 볼 게 없는 구조였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자존감이 바닥이고 당장 머물 곳조차 없는 이들이 실제 취업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는 직접 발로 뛰었다. 부사수와 함께 대구 성서·대덕산업단지와 부산 등지로 출장을 다니며 업체를 발굴하고 수용자를 매칭했다.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던 업체들을 설득했다. 추천하는 수용자 대부분이 생계형 범죄를 저질렀고, 법무부가 보증하며 신원이 확실한 상황에서 연결해주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일손이 귀한 중소기업 현장에서 설득은 통했다.
더 큰 문제는 출소와 취업 사이의 빈틈이었다. 일요일 아침에 나온 이에게 월요일 출근을 시키면, 그 하루를 못 버티고 연락이 끊기는 사례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휴일에도 직접 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지부와 연계해 산업단지 인근에서 숙식을 제공받게 했고, 월급의 일부를 저축해야 계속 지낼 수 있는 시스템으로 자립의 발판을 놓았다.
성과는 미담으로 돌아왔다. 20대 중반의 한 수용자를 대구의 한 샷시 공장에 취업시키고 인근에 숙소를 마련해 줬는데, 그가 우수 사원이 되자 공장 측이 먼저 감사 연락을 해왔다. 이 사연은 법무부에까지 전해졌고, 지난해 교정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됐다. 그가 이런 식으로 연결해 준 출소자는 40여 명에 이른다.
물론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6개월 만에 그만두는 이도, 다음 날 만나기로 한 새벽에 이미 술로 인사불성이 된 이도 있었다. 수습이 안 될 때는 시청에서 차비를 받아 본가로 돌려보냈고, 출소자를 태우고 가다 교통사고가 난 적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안에서 통제하고 제압하던 일만 하다가, 밖으로 나가 누군가의 새 출발을 돕는 일을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며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참 보람 있었다"고 돌아봤다.
최 교감은 올해 교정관 승진시험에서 만점을 받으며 오는 7일 교정관 발령을 앞두고 있다. 27년간의 현장 생활에서 밖으로 이어 줄 만한 수용자도 있지만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더 크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지충호와 신창원, 조두순 등 이른바 흉악범을 전담 관리한 그였지만, 27년간 겪은 교정 현장에서 가장 큰 고충으로 인력 부족과 열악한 환경을 꼽았다.
문을 여닫는 일은 기계가 대신하게 됐지만, 수용자와 마주 앉아 상담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일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이 부족하다. 현재 수용률은 120%를 넘어, 작은 방 하나에 여섯 명이 칼잠을 잔다. 여름이면 통풍이 안 돼 숨쉬기 어려울 만큼 덥고, 쓰러지는 수용자가 속출한다. 교정위원들에게 지원받은 생수를 얼려 아침저녁으로 나눠 주고 선풍기를 돌려도 한계가 있다. 천 명이 한꺼번에 물을 틀면 수압이 떨어져 물조차 안 나오는 게 현실이다.
수용자 인권이 강조되면서 책임은 오롯이 교도관 몫이 됐다. 그는 "안에서 수용자가 잘못되면 교도관이 모든 책임을 지다 보니, 다들 30분 단위로 순찰을 돈다"며 "사실 순찰이 지나간 뒤 30분이면 불상사가 벌어지기 충분한 시간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만이라도 제도를 완화해 주면 훨씬 나을 것"이라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정보공개청구와 고소·고발이 이어지는 현실도 토로했다.
경찰·소방·군인과 함께 4대 제복 공무원으로 꼽히지만, 교도관은 음지에서 일한다. 그는 "우리가 이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사회가 당장 엉망이 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알아주는 이가 적다"며 "처음 시작할 땐 '반쯤 미친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했다. 3부제가 4부제로 바뀌고 처우도 나아졌지만, 아직 다른 제복 공무원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정경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