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옮겨다니는 건설근로자… "질병재해 입증책임 과도"
고강도 육체노동에 연장·야간 근무
극단 오가는 날씨도 신체부담 가중
뇌심혈관질환·직업성 암 집중 발생
산재 인정 위해선 업무관련성 입증
고용 구조상 근거자료 충분치 않아
작업이력 기록·확인 시스템 갖춰야
최근 5년여간 국내 20대 건설사에서 발생한 질병사망자 10명 중 7명은 뇌심혈관질환이나 직업성 암에 걸려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통상 건설현장 질병재해는 고강도 노동과 유해요인 노출 등 위험이 장기간 누적돼 발생한다. 여러 현장을 옮겨 다니는 건설 노동자는 과거 작업이력을 입증하기 어려워 관리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30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올해 1·4분기까지 질병사망자 144명 가운데 뇌심혈관질환이 58명, 직업성 암이 46명으로 두 질환이 전체의 72.2%를 차지했다. 특히 뇌심혈관질환에 따른 사망은 2021년 15명, 2022년 12명, 2023년 6명, 2024년 7명, 지난해 10명으로 매년 발생했다. 올해는 1·4분기에만 8명이 사망했다.
건설현장에서는 높은 육체적 노동강도에 더해 연장·야간근무로 하루 18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어렵거나 폭염·한파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작업환경도 신체적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이다. 특히 고혈압·고지혈증·당뇨 등 기초질환이 있는 노동자에게 과로나 스트레스가 겹치면 심근경색, 뇌졸중 등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직업성암 사망자는 2021년 2명, 2022년 4명에서 2023년 10명으로 늘었고 2024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13명을 기록했다. 올해 1·4분기에도 4명이 집계됐다. 직업성암의 경우 현장 작업 공정에 따라 분진이나 화학물질 등 발암성 유해요인에 장기간 노출되는 것이 주요 발병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질병 위험요인이 오랜 기간 누적되더라도 실제 산재 인정 과정에서 업무 관련성이 온전히 확인되기는 쉽지 않다. 건설업 특유의 고용·작업 구조 때문이다. 질병산재를 신청하는 시점에 과거 일했던 현장이 이미 준공된 경우도 많다. 업무 관련성을 판단하려면 인사자료와 작업환경 측정자료, 건강진단자료 등이 필요하지만 관련 기록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다반사다. 무등록 업체나 불법 하도급 구조에서는 근무 사실 자체가 공식 기록에서 빠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 같은 기록의 공백은 산재 통계의 사각지대로도 이어진다. 업무이력이나 유해요인 노출을 입증하지 못해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는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미소 노무사는 "무등록·무자격 사업장에서 일한 것이 근로자의 잘못이 아님에도 과도한 입증책임을 요구해 산재가 불인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지금은 근로자가 감당해야 할 입증책임이 너무 무겁다"고 지적했다.
결국 질병사망의 사각지대를 줄이려면 기업이 노동자의 근무이력을 체계적으로 기록·관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근로자가 자신의 과거 작업 관련 자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접근권을 넓히는 것도 대안이다. 미국과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노동자가 기업에 업무·작업이력 자료를 요구하면 기업이 이에 응하도록 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업무이력과 유해요인 노출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노동자가 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업무 관련성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근로자들이 이를 입증할 만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업무·작업이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김예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