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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채니까 사던' 시대 끝났다… 신뢰 하락이 부른 고금리[글로벌 리포트]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美 우선주의에 동맹국들도 매입 망설여
3대 보유국이던 中·日·英 모두 '축소'
대신 은행·헤지펀드 등 민간투자자 유입
가격 민감해지며 30년물 5%대까지 급등
재정적자에 국채 더 많이 찍어내는 美
공급은 느는데 안정적 수요처는 줄어
투자자들 오히려 빅테크 회사채에 주목
세계의 돈, 美정부 아닌 기업으로 향해

'美 국채니까 사던' 시대 끝났다… 신뢰 하락이 부른 고금리[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국 국채시장이 수요와 공급 양쪽에서 동시에 압박받고 있다. 미국 정부가 빌려야 할 돈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과거 미국의 재정적자를 떠받쳤던 해외 중앙은행과 정부의 역할은 줄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투자 경쟁에 뛰어든 빅테크까지 수천억달러의 회사채를 쏟아내면서 미국 정부와 세계 투자자들이 자금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결국 국채 공급은 늘고 안정적인 수요는 약해지는 가운데 민간의 자금 수요까지 폭증하면서 미국이 과거처럼 낮은 비용으로 세계의 돈을 빌리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최근 5.3%를 넘어서며 2007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급기야 미 재무부는 10~30년 장기 국채를 직접 사들이는 바이백 규모를 두 배로 확대하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시장 유동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지만 40조달러를 넘어선 국가부채와 좀처럼 잡히지 않는 장기금리를 놓고 미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시장은 받아들이고 있다.

■中·日·英 나란히 줄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미국 국채의 안정적인 수요를 담당했던 동맹들의 적극적인 미 국채 매입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 동맹들은 미 국채 금리가 조금 비싸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미묘한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세계는 여전히 미국에 투자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에 예전처럼 싼값에 돈을 빌려줄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미 재무부가 지난 17일(현지시간) 발표한 국제자본수지(TIC)에 따르면 외국인이 보유한 미 국채는 지난 6월 9조2990억달러로 전월 9조3710억달러보다 약 720억달러 감소했다. 전년 동월보다는 2.3% 증가했지만 미국의 3대 해외 국채 보유국인 일본과 영국, 중국은 모두 보유량을 줄였다.

최대 보유국 일본의 미 국채 보유액은 5월 1조1430억달러에서 6월 1조1160억달러로 2.3% 감소했다. 2위 영국도 한 달 사이 9486억달러에서 9399억달러로 1% 감소했다. 변화가 가장 뚜렷한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5월 6593억달러에서 6월 6334억달러로 한 달 만에 4% 줄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3% 이상 감소했다. 한때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었던 중국은 일본과 영국에 이어 3위로 내려앉았다.

그렇다고 외국인들이 미 국채를 대거 내던지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외국인의 전체 미 국채 보유액은 1년 전보다 여전히 증가했다. 미 재무부의 TIC 통계도 제3국 금융기관을 통해 보관된 국채의 최종 소유자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절대 보유액보다 누가 미국의 빚을 떠안고 있느냐다. 금융위기 이후 한때 외국인이 보유한 미 국채 비중은 약 57%까지 올라갔지만 2025년 말에는 32% 안팎까지 낮아졌다. 미 재무부의 별도 연례 조사에서도 외국인 비중은 2020년 이후 약 33%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이 보유한 미 국채 가운데 중앙은행 등 공식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59%에서 43%로 떨어졌다.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과거 안정적인 돈줄 역할을 했던 해외 중앙은행의 수요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美국채니까 산다"에서 "얼마 줄 건데"로

미 국채의 구매자가 바뀐다는 것은 단순한 통계상의 변화가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 중앙은행 등이 미 국채를 사들인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외환보유액 운용이었다. 수익률이 다소 낮더라도 세계 최대의 유동성과 안전성을 가진 달러 자산을 보유할 필요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가격에 둔감한 '사서 보유하는(buy and hold)' 투자자였다.

이들의 빈자리를 뮤추얼펀드와 은행, 헤지펀드, 가계와 해외 민간투자자가 메우고 있다. 바클레이스에 따르면 시장에서 거래되는 미 국채 규모는 2006년 약 4조달러에서 올해 29조달러로 7배 이상 늘었다. 2006년 민간과 공식부문이 각각 시장의 절반가량을 보유했지만 현재 민간투자자의 비중은 73%까지 높아진 반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해외 중앙은행 등 공식부문은 27%로 낮아졌다. 바클레이스는 이에 따라 미 국채 수요가 과거보다 "실질적으로 가격에 더 민감해졌다"고 평가했다.

민간투자자는 다르다. 미국 정부가 발행한다는 이유만으로 낮은 수익률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장기간 돈을 빌려주는 데 따르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변동 등 불확실성에 대해 추가 보상을 요구한다. 이른바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이다.

최근 자금 흐름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해외 민간투자자의 6월까지 최근 12개월 미 중장기 국채 순매수는 3290억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40% 이상 감소했다. 6월 순매수는 166억달러로 1월 이후 가장 적었고 해외 중앙은행 등 공식기관은 같은 달 98억달러를 순매도했다. 공식기관은 최근 12개월 동안에도 미 중장기 국채를 349억달러 순매도했다.

결국 미국 정부가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할수록 가격에 민감한 민간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충분한 수익률을 제공해야 하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30년물 금리가 5%를 넘어선 배경을 연준의 기준금리 전망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美 떠나는 게 아니라 美기업 산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해외 자금이 미국 자체를 떠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6월 해외 민간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는 1447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최근 12개월 동안에는 8050억달러에 달해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6% 증가했다. 거래 기준으로 전체 외국인의 6월 미 국채 순유입은 68억달러에 그친 반면 미국 주식으로는 1814억달러가 들어왔다.

세계가 미국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대신 미국 기업의 성장에 더 많은 돈을 걸고 있는 셈이다. AI 투자 붐은 이런 흐름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엔비디아 등 미국 기술기업의 성장 기대가 해외 자금을 미국 증시로 빨아들이는 동시에 아마존과 알파벳 등 빅테크는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 건설을 위해 채권시장에서도 막대한 자금을 끌어가고 있다.

올해 미국의 AI 관련 회사채 발행 규모는 이미 2200억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125억달러의 17배가 넘는다. 올해 8월 중순까지 미국 전체 회사채 발행액도 1조6800억달러로 전년보다 27% 증가했다. AI 관련 회사채 공급이 급증하면서 기술기업 회사채 스프레드는 전체 투자등급 회사채보다 9bp(1bp=0.01%) 높은 89bp까지 벌어졌다.

세계 채권투자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늘어난 셈이다. 30년 동안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것뿐 아니라 초우량 빅테크가 발행하는 장기 회사채를 통해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도 있다.

물론 AI 회사채가 미 국채금리 상승의 주범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미 국채 시장은 AI 회사채 시장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기업이 동시에 장기자금을 대규모로 요구하면서 세계 투자자의 돈을 놓고 경쟁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40조달러 빚과 '미국 우선주의'의 역설

문제는 미국 정부의 자금 수요가 줄어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국가부채는 지난 19일 사상 처음 40조달러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민간이 보유하는 국채 등은 32조3000억달러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백악관에 입성한 2017년 19조9500억달러였던 전체 국가부채는 10년도 지나지 않아 두 배 이상 불어났다. 이자비용은 이미 메디케어를 넘어 사회보장연금에 이어 미국 연방정부의 두 번째로 큰 지출 항목이 됐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2019년 이후 해마다 국내총생산(GDP)의 4%를 웃돌았다. 현재 연방정부의 이자지출만 GDP의 약 3%에 이른다. 문제는 경기침체나 전쟁과 같은 비상상황이 아닌데도 대규모 적자가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감세 정책도 부담을 더하고 있다. AI 설비투자 등에 대한 비용처리 확대 등의 영향으로 기업 세수가 감소하는 반면 복지와 국방비 등 구조적 지출은 계속 늘고 있다. 의회예산국(CBO)의 장기 전망을 토대로 하면 정부 내부 보유분을 제외한 대중 보유 연방부채는 2036년께 56조달러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재무부까지 나섰다…5%가 뉴노멀 되나

해외 중앙은행의 역할이 줄고 가격에 민감한 민간투자자가 미국 정부의 빚을 더 많이 떠안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가 크게 개선되지 않는 한 기준금리가 내려가더라도 30년물 금리가 과거의 3%대로 쉽게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30년물 5%가 일시적인 고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장기금리 5%대가 고착되면 파장은 채권시장에 그치지 않는다. 모기지 금리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여 주택과 투자를 압박한다. 동시에 정부가 새로 발행하는 국채의 이자 부담을 키운다. 늘어난 이자비용은 다시 재정적자를 확대하고 더 많은 국채 발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채 증가→국채 발행 증가→장기금리 상승→이자비용 증가→재정적자 확대라는 악순환이다.

장기적으로는 '재정 우위(fiscal dominance)' 논쟁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 부채와 이자비용이 너무 커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물가안정보다 정부의 자금조달 부담에 영향을 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미국이 현재 재정 우위에 들어갔다고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경고음은 이미 나오고 있다.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 겸 전 재무장관은 지난 1월 미국경제학회(AEA) 연례회의에서 "재정 우위의 전제조건들이 분명히 강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옐런은 정부의 재정 상황이 통화정책을 압도할 경우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해 필요한 수준보다 금리를 낮게 유지하거나 정부의 자금조달 부담을 덜기 위해 대규모 국채 매입에 나서야 하는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달러 패권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돈은 여전히 미국으로 몰린다. 다만 향하는 곳이 바뀌었을 뿐이다. 지난 6월 해외 자금이 미 국채에 남긴 돈은 68억달러, 미국 주식에 남긴 돈은 1814억달러였다.

이병철 뉴욕 특파원
이병철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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