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할 필요 없다"…ETF 500조 시대, 다시 뜨는 '운용사 전문화' [fn마켓워치]
한투운용, 펀드·MMF 떼어 밸류운용으로…2027년 새 체제
삼성·트러스톤도 일찌감치 분사 실험…전략별 '선택과 집중'
과거엔 운용철학 분리, 지금은 ETF 급성장 속 자원배분 경쟁
[파이낸셜뉴스]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500조원대로 커지면서 자산운용업계의 경쟁 공식도 달라지고 있다. 주식·채권·ETF·머니마켓펀드(MMF)까지 한 회사가 모두 끌어안던 '종합운용사' 모델에서 벗어나 잘하는 영역에 인력과 자원을 집중하는 전문화 전략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단행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사업 재편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집합투자업 가운데 유가증권펀드와 MMF 사업을 인적분할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 흡수분할합병한다. 2027년 1월 1일 새 체제 출범이 목표다.
표면적으로는 계열 운용사 간 사업 이관이지만 운용업계의 시선은 그 이후에 쏠린다. 한투운용은 ACE ETF 등 패시브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밸류운용은 유가증권펀드 등을 흡수해 액티브 운용 전문성을 강화하는 구조다. 한 회사가 모든 전략을 가져가기보다 각자의 전선을 명확히 하는 셈이다.
운용사를 전략별로 나누는 시도 자체가 처음은 아니다. 앞서 삼성자산운용은 2017년 국내 주식형 액티브 부문을 삼성액티브자산운용으로 분리하면서 ETF·인덱스 등 패시브 사업과 운용체계를 나눴다. 트러스톤자산운용 역시 헤지펀드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분사하는 등 전문화 실험에 나선 바 있다.
다만 10년 전과 지금은 전문화를 압박하는 시장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 업계 관전평이다.
당시에는 운용철학과 성과보상 체계를 독립시키고 각 조직의 색깔을 강화하려는 성격이 컸다면 지금은 급성장한 ETF 시장이 운용사의 자원 배분 자체를 흔들고 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내 ETF 순자산은 올 상반기 500조원을 넘어섰다.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양강뿐 아니라 KB·한국투자·신한 등 대형 운용사들이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중소형 운용사까지 테마형·액티브 ETF를 앞세워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라며 "상품 개발과 운용인력, 마케팅 비용을 어디에 집중할 지가 점유율을 좌우하는 구조가 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투운용 역시 ACE ETF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했지만 시장 전체가 더 가파르게 팽창하면서 경쟁 강도도 높아졌다. 이번 사업 재편을 단순한 조직 효율화보다 ETF를 비롯한 핵심 사업에 경영자원을 집중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는 이유다.
밸류운용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가치투자 전문 하우스로 출발한 밸류운용이 유가증권펀드와 MMF를 넘겨받으면서 액티브 운용 플랫폼으로 외연을 넓히게 된다. 한투운용의 '덜어내기'와 밸류운용의 '확장'이 동시에 이뤄지는 구조다.
또 다른 운용업계 관계자는 "ETF 시장이 워낙 빠르게 커지면서 이제 모든 상품군을 두루 갖추는 것만으로 경쟁력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며 "상품과 인력, 마케팅 자원을 어느 분야에 집중할 것인지가 운용사 경쟁력의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과거 운용사 전문화가 각자의 운용철학을 선명하게 만들기 위한 실험이었다면 지금은 성격이 한층 현실적으로 변화 중"이라면서 "ETF 500조원 시대에 접어들면서 운용사들마다 더 잘 할 수 있는 조직이나 업무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가 거세질 것"이라고 봤다.
[email protected] 김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