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유아차로 못 넘던 10㎝의 벽… 법으로 변화 만들다
법무법인 지평 후원… 공익법단체 ‘두루’
소규모 점포 편의시설 설치의무 제외
‘모두의 1층’ 소송서 국가배상 첫 인정
외국인보호소의 무기한 구금에 제동
이주민·난민 인권 보호도 적극 나서
아동·청소년 법률 지원 생태계 조성
‘온 마을 Lawyer’ 4년간 144명 지원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집 앞 편의점 문턱 10㎝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유아차를 끄는 부모에게도, 보행기에 의지하는 노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한 뼘의 장벽을 법정으로 끌고 가 해결한 곳이 공익법단체 두루다. 두루는 2014년 9월 '사람 중심'이라는 가치에 터를 잡고 법무법인 지평의 후원으로 설립됐다. 현재 11명의 전업 상근 변호사를 포함해 모두 14명이 활동하고 있다. 국내 전업 공익변호사 조직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고 두루는 설명한다. 두루는 지평과 함께 법률전문가로서의 역량을 기반으로 일반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넘어 사회구조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법률 기반 사회공헌 모델'을 구축해왔다. 개별 사건에 대한 상담과 자문에서 시작해 기획 소송, 입법·제도 개선, 국제인권메커니즘 활용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며 법·정책·현장·인식의 네 영역에서 변화를 이끄는 방식이다.
■24년 방치된 시행령… 국가배상 책임 처음 인정받다
두루의 대표적인 성과는 '모두의 1층' 공익소송이다. 장애인의 실질적 사회참여를 가로막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물리적 접근성 부족을 겨냥한 소송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공중이용시설 가운데 바닥면적 300㎡ 미만인 소규모 소매점 등을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기준이 24년간 유지되면서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의 약 95%가 설치 의무를 면제받았다.
1심과 2심은 이 규정이 장애인의 접근권을 사실상 박탈해 행복추구권과 일반적 행동자유권, 평등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국가가 위헌적 규정을 제정하고 방치한 데 고의나 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국가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판을 뒤집은 것은 상고심이었다. 지평이 합류해 국가배상에 관한 판례와 학설, 해외 사례를 심층 보강했다. 대리인단은 고의·과실을 개별 공무원이 아니라 조직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이른바 '조직 과실' 이론을 국내외 판례와 함께 제시했다. 여기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 장애인권리협약 비준으로 법 현실이 달라진 점 △장애인 단체가 해당 조항을 꾸준히 문제 삼아온 점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반복해 개선을 권고한 점을 근거로 공무원들이 위법성과 개선 의무를 인식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개선입법 의무가 발생했는데도 장기간 방치한 부작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보고 고의·과실을 인정했다. 부진정행정입법부작위에 대한 최초의 국가배상 판결이자, 장애인의 접근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확인한 첫 판결이었다.
■당사자 운동의 역사가 판결문에 들어오다
이 판결의 무게는 배상 액수에 있지 않다. 형식적으로 관계 법령을 만들어 두는 것만으로는 국가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사회보장과 관련된 여러 행정입법의 미비에 대해서도 사법적 구제의 길을 넓혔기 때문이다.
장애인단체의 접근권 운동과 국제기구·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공무원의 위법성 인식을 판단하는 근거로 쓰였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당사자 운동의 역사가 판결문 안으로 들어온 것이자, 국제기구 권고와 같은 연성규범의 국내적 효력을 일부 인정한 결과이기도 하다. 소송의 기획과 진행 과정에서 원고와 대리인, 참고인 모두에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해 당사자 운동과 송무 사이의 간극을 좁혔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진도 이어졌다. 대법관 2인은 보충의견으로 기존에 설치된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도 단계적으로 설치 의무를 부과하도록 부칙과 시행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행정입법 개선의 방향을 제시했다. 대법관 4인은 소수의견으로 공무원의 주관적 책임을 따지지 않고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법률상 근거 없이 요구돼 온 '객관적 정당성 상실' 요건의 폐지를 주장해 판례 변경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전원합의체 공개변론 과정에서는 대법원 접근로를 점검하며 사법부 내부의 접근성 개선 논의를 촉발하기도 했다.
■외국인 '무기한 구금'에 제동… 국제인권 기준을 국내로
이주민과 난민의 권리를 지키는 일도 두루의 주요 축이다. 대표 사례가 출입국관리법 제63조 제1항의 이른바 '외국인 무기한 구금' 조항을 다툰 사건이다.
이 조항은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외국인을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시설에 수용하도록 하면서 보호 기간의 상한을 두지 않았다. 언제 풀려날지 알 수 없는 구금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두루는 지평과 함께 2018년 입국한 뒤 난민 신청이 거부돼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던 이집트 출신 아동을 대리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냈다. 외국인 인권 보장에 이정표를 세운 결정으로 평가받는다.
두루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벌어진 이른바 '새우꺾기' 가혹행위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보호소 안에서 이뤄지던 위법한 장비 사용과 징벌적 독방 구금 관행을 끊어내기 위한 활동도 함께 이어왔다.
활동 무대는 국내 법정에 머물지 않는다. 두루는 한국의 인권침해 문제를 유엔에 지속적으로 제기해 유의미한 권고를 끌어내는 등 국제인권메커니즘을 활용한 권리옹호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국 144명 '온 마을 Lawyer'… 아동·청소년 권리옹호 생태계 구축
아동·청소년 권리 분야에서 두루가 힘을 쏟는 것은 전국 단위의 공익법률지원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두루는 2022년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삼성생명의 지원을 받아 국내 최초의 아동·청소년 공익법기금 사업인 '아동·청소년 인권옹호 생태계 조성을 위한 법률지원 사업: 온 마을 Law'를 전개해 왔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에서 이름을 따왔다. 아동·청소년의 사법접근권과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전국 단위 권리옹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두루는 지난 4년간 144명의 '온 마을 Lawyer'에게 모두 6억원가량의 활동비를 지원했다. 전국 곳곳에서 이들이 주체가 돼 진행한 상담과 소송, 제도 개선 등 수천 건의 권리옹호 활동은 사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아동·청소년의 삶을 실제로 바꿔놓았다.
제도 개선 성과도 뒤따랐다. 민법상 부모의 징계권을 삭제하고,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청소년성보호법을 개정하는 등 아동·청소년 권리를 강화하는 굵직한 변화에 기여했다.
■소송서 입법·국제사회까지… 공익법 외연 넓혀
설립 10주년을 넘긴 두루가 걸어온 길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상담과 자문을 통해 현장의 문제를 발견하고, 공익소송으로 법적 쟁점을 제기한 뒤, 입법과 제도 개선으로 변화를 완성하는 방식이다. 판결문 한 장에서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두루는 '모두의 1층' 소송과 '외국인 무기한 구금' 위헌 소송,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제한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비롯해 민법상 부모의 징계권 삭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의 처벌 대상 제외를 담은 청소년성보호법 개정, 공항 난민 대기시설인 출국대기실의 운영 주체를 국가로 전환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정 등 여러 영역에서 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런 공익활동과 사회적 가치 창출을 인정받아 두루는 한국장애인인권상 인권실천부문을 수상했고, 대한민국인권상 단체부문 국가인권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특별협의지위 단체로서 국제사회의 인권 기준을 국내에 적용하고 연대하는 활동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임성택 두루 이사장은 "두루가 그동안 추구해 온 공익활동의 특징은 개별 사건의 승소에 머물지 않고, 그 성과를 법과 제도의 변화로 확장한다는 데 있다"며 "두루는 변호사단체의 틀을 벗어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함께 솔루션을 찾고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임팩트를 추구하려 한다"고 전했다.
[email protected] 김동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