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기행' 박소담 "늘 괜찮은 척했지만…안 괜찮은 나도 받아들이게 됐죠"[인터뷰]
[파이낸셜뉴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2021년 갑상선 유두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휴식기를 가진 배우 박소담이 영화 '유령'(2023)이후 오랜만에 신작을 들고 돌아와 지난 시간을 돌이키며 "안 괜찮은 나도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소담은 최근 영화 '경주기행'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졸업하자마자 여러 오디션을 거쳐 '사도'와 '경성학교', '검은 사제들' 등 좋은 작품을 연이어 만났다"며 "체력이 좋은 편이라 가진 에너지를 계속 쏟아내며 살았다"고 돌이켰다.
자신을 끊임없이 보여줘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정작 인간 박소담을 돌볼 틈은 없었다. 그는 "밖으로 에너지를 계속 내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인풋이 고갈돼 아웃풋이 나오지 않았다"며 "배우로서 공허함을 느꼈고, 연기하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암 진단을 받았을 당시에는 이른바 '차분한 쇼크 상태'에 빠졌다. 주연작 '특송'(2022) 홍보 일정이 이미 잡혀 있던 상황에서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으니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충격을 받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잘 수술하고 오겠다'고 단체문자를 보낸 뒤 수술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박소담은 "수술 직후에는 어떻게든 빨리 좋아지려고 안간힘을 썼다면, 지난 2년은 제대로 휴식을 취했다"며 "밖으로만 향하던 시선을 내 안으로 돌려 인간 박소담을 들여다봤다"고 말했다.
현재 몸 상태가 완전히 과거와 같아진 것은 아니다. 갑자기 기운이 떨어지는 날도 있고, 매일 약을 먹으며 6개월마다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다만 몸의 신호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안 괜찮은 나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늘 괜찮은 척했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운동도 해요. 그래도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계속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푹 잘 쉬어서일까. 박소담은 이날 유난히 예뻐보였다.
박소담은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야 움직이던 '파워 J'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철저함을 내려놨다. 요즘은 기내용 가방 하나만 들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꽃시장에서 꽃을 한 아름 사 와 음악을 틀어놓고 한 줄기씩 다듬는 일도 새로운 즐거움이 됐다.
무엇보다 분명해진 것은 연기에 대한 마음이다. 박소담은 "연기를 하지 못하니 '연기하고 싶다'는 말이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며 "오랜만에 배우들과 함께 연기해보니 현장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그 즐거움을 되찾게 해준 작품이 김미조 감독의 영화 '경주기행'이다. 영화는 8년 전 수학여행에서 막내딸 경주를 잃은 엄마 옥실(이정은)과 세 딸 장주(공효진), 영주(박소담), 동주(이연)가 직접 복수하기 위해 경주로 떠나는 과정을 그린다.
박소담은 "시나리오가 정말 좋아서 선택한 작품"이라며 "계획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 여정을 떠난 가족이 괜찮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고 말했다.
'기생충'에서 호흡을 맞춘 이정은에 공효진과 이연까지 합류하면서 극 중 가족은 촬영장 밖에서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네 사람은 성격과 기질은 달랐지만 함께 있는 데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편안했다고 했다.
"누군가의 숙소에 모이면 효진 언니와 연이는 게임을 하고, 저는 누워서 두 사람을 바라보곤 했어요. 말없이 가만히 있어도 편했죠. 우리끼리 산책하러 나가면 엄마는 '나는 쉴게' 하며 방에 남아 있고요. 그런 모습까지 진짜 가족 같았어요."
촬영이 끝난 뒤에도 네 배우의 단체대화방은 여전히 활성화돼 있다.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이정은을 박소담은 '언니'라고 부르다가도 자연스럽게 '엄마'나 '어무니'라고 부른다.
박소담이 연기한 영주는 냉정하고 치밀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불안이 큰 인물이다. 박소담은 "영주가 모든 계획을 차질 없이 세우는 것도 겁이 많기 때문이라고 봤다"며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까지 계산해야 안심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영주의 내면에는 아빠와 막내 동생 경주에 대한 연민, 엄마를 말리지 못했다는 불안, 가족의 선택이 옳은지를 묻는 의심이 뒤엉켜 있다. 억눌러온 감정은 결국 막내 동주에게 해서는 안 될 말로 터져 나온다.
"가장 싫은 소리를 오히려 가족에게 하고 뒤늦게 후회할 때가 있잖아요. 영주는 동주를 탓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 싫었을 거예요. 동주가 안고 살아온 죄책감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실제로는 장녀인 박소담은 여동생을 통해 둘째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그는 둘째를 첫째와 막내 사이에 낀 '샌드위치' 같은 존재로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여린 마음을 감추기 위해 말과 태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면에서는 영주와 자신이 닮았다고 했다.
영화를 본 배우 고아성은 "언니는 첫째인데, 숨만 쉬어도 둘째처럼 보였다"고 말했단다. 박소담은 이를 "둘째 영주를 연기한 배우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면서 "친 여동생에게도 내 연기가 어떻게 보였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웃었다.
"'경주기행'은 극장을 나온 뒤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예요. 관객들이 이 가족의 여정을 따라가며 여러 감정을 느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