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작년 가을엔 대체 뭘 입었지?"… 찬바람 부는 9월 3일, 아빠들의 씁쓸한 옷장 [어른의 오답노트]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훌쩍 커버린 아이들 가을옷 결제는 1초, 내 셔츠 한 장 앞에서는 다가올 '추석' 핑계로 망설이는 4050. 서늘해진 아침 공기 앞에서 낡은 재킷을 꺼내 입는 가장들의 눈물겨운 출근길.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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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9월 3일 목요일 아침.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밤잠을 설치게 하던 열대야가 거짓말처럼 물러가고, 출근길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제법 서늘한 찬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계절이 바뀌는 이 시기, 대한민국 4050 남성들은 아침마다 텅 빈 옷장 앞에서 미스터리한 철학적 고민에 빠진다.

"도대체 작년 가을엔 뭘 입고 다녔지?"

옷장 문을 열면 5년째 유행이 지난 칙칙한 재킷과 목이 살짝 늘어난 셔츠들만 훈장처럼 걸려 있다. 분명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출근은 했을 텐데 당장 오늘 아침 걸치고 나갈 번듯한 겉옷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서늘해진 공기에 몸을 웅크리며, 가장들은 결국 작년 이맘때 입었던 그 낡고 익숙한 카디건을 다시 꺼내 든다.

◇ 훌쩍 큰 아이들의 바람막이, 그리고 멈춰버린 아빠의 시간

사실 옷장 속 옷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위한 '결제 버튼'이 멈춰버렸을 뿐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아이들의 가을 바람막이와 새 운동화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고민 없이 1초 만에 결제한다. "애들은 금방 크니까 좋은 거 입혀야지"라며 아내와 맞장구를 친다.

하지만 정작 점심시간, 스마트폰으로 눈여겨보던 5만 원짜리 내 가을 셔츠 앞에서는 손가락이 무겁게 멈칫한다.

장바구니에 넣었다 빼기를 수차례. 결국 "작년에 입던 옷 아직 입을 만한데 뭐"라는 뻔한 자기합리화와 함께 조용히 쇼핑 앱을 닫는다.

◇ 여름휴가 청구서와 '추석'이라는 거대한 그림자

9월 초입, 가장들의 지갑이 유독 굳게 닫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마트폰 알림창에는 지난달 가족들과 다녀온 '여름휴가 카드값' 명세서가 무거운 청구서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달력을 한 장 넘기면 곧바로 대한민국 가장들의 최대 방어전인 '추석'이 버티고 있다.

양가 부모님 용돈부터 차례상 비용과 귀성길 주유비까지. 9월은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는 '재무적 보릿고개'다.

이 무시무시한 지출의 파도 앞에서, 아빠의 가을 셔츠 한 장은 가계부의 가장 첫 번째 삭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내 옷장을 비워 가족의 풍요로운 가을을 채워 넣는 것, 그것이 4050 가장들이 무채색의 9월을 버텨내는 방식이다.

◇ 낡은 재킷이 증명하는 가장 따뜻한 방어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 3일의 출근길. 화려한 신상 트렌치코트를 입은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 지난 낡은 겉옷을 걸친 당신의 어깨가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백화점 쇼윈도에 걸린 멋진 가을옷을 곁눈질하며 씁쓸한 입맛을 다실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너무 초라하게 여기지 말자. 당신이 5년째 입고 있는 그 낡은 재킷은 경제적 무능력의 상징이 아니라, 가족의 우주를 온전히 지켜내고 있다는 가장 명예로운 훈장이다. 내 옷장의 시간은 몇 년째 멈춰있지만, 그 희생을 자양분 삼아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이번 가을에도 한 뼘 더 따뜻하게 자라나고 있다.

가슴 한구석에 스쳐지나가는 찬바람의 냉기가 느껴지는 출근길,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스스로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네보자.

찬 바람을 맨몸으로 막아내는 당신의 그 낡은 겉옷 덕분에, 우리 집의 9월은 그 어떤 집보다 따뜻하고 풍요로울 것이라고.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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