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룸살롱 접대 혐의' 지귀연 부장판사 기소...뇌물수수 불기소 왜?(종합)
[파이낸셜뉴스]룸살롱에서 접대받은 혐의로 지귀연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를 재판에 넘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당시 지 부장판사가 룸살롱에 4~5시간 머문 정황도 확보했다. 술을 한두 잔 마신 뒤 자리를 떠났다는 지 부장판사의 기존 해명과 배치된다는 게 공수처 판단이다.
다만, 공수처는 향응을 제공한 변호사들과 지 부장판사 사이의 직무 관련성은 인정하면서도 재판 편의 제공 등 구체적인 대가성을 입증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고, 뇌물수수 혐의는 불기소 처분했다.
공수처 수사3부(이대환 부장검사)는 4일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지 부장판사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이날 지 부장판사의 소속 법원인 서울북부지법에도 수사 결과를 통보하고 징계를 요청했다.
지 부장판사는 지난 2023년 8월 변호사 A씨와 B씨로부터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예약제 주점에서 409만원 상당의 술값을 결제하도록 해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는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이 직무 관련 여부나 기부·후원·증여 등 명목과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약속하는 것을 금지한다.
공수처는 지 부장판사의 택시 승차 기록 등을 토대로 당시 주점 체류시간도 추적했다. 수사팀은 주점에 들어간 뒤 다시 택시를 타기까지 약 4~5시간의 공백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이날 공수처 관계자는 "주점에 들어간 뒤 약 4~5시간 이후 택시에 승차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지 부장판사의 기존 해명과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저희는 배치된다고 보고 있다"고 답했다.
지 부장판사는 공수처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하면서 관련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거나 술에 취해 잠이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점에서 장시간 함께 술을 마신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진술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공수처는 실제 음주량까지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앞서 진행된 법원 자체 감찰과 이번 수사 결과에 차이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수사팀은 대법원 감찰 단계에서는 이번 공소사실에 해당하는 결제금액 전체를 확보하지 못했고, 강제수사권이 없어 당일 이동 동선 등을 확인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공수처는 수사 과정에서 택시 호출 내역과 금융자료 등을 추가로 확보했다. 변호사 A씨가 해당 주점에서 결제한 내역은 모두 6건으로 파악됐고, 이 가운데 지 부장판사의 택시 이용 내역 등과 동선이 일치하는 두 차례를 특정했다. 일부 비용은 술자리가 끝난 뒤 계좌이체 방식으로 지급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수사는 지난해 5월 시민단체 등이 지 부장판사를 뇌물수수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공수처는 같은 해 7월 의혹을 제기한 국회의원실 관계자 등으로부터 자료를 확보한 뒤 통신영장과 택시 호출·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을 토대로 수사를 이어갔다.
강제수사에는 상당한 제약도 있었다. 주점 업주에 대한 금융계좌 영장이 기각됐고 추가 통신영장과 휴대전화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발부되지 않았다. 공수처는 업주와 관련자들을 설득해 금융거래 내역과 방문 시점, 결제 내역 등을 임의제출 방식으로 확보했다.
공수처는 향응을 제공한 변호사들이 지 부장판사와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재판 편의 제공 등 청탁과 대가성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그러나 지 부장판사가 속한 재판부에 해당 변호사들의 사건 수임 내역이 확인되지 않는 등 구체적인 대가관계를 입증할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
과거 재판과의 연관성도 조사했다. 공수처에 따르면 지 부장판사가 2013년 수원지법 민사합의부에서 근무할 당시 변호사 A씨가 수임한 사건 중 1심에서 패소했다가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이 내려진 사례가 확인됐다.
하지만 공수처는 해당 사건과 이번 향응 제공 사이에 약 10년의 시간 차이가 있고 사건 규모 등을 고려할 때 과거 직무에 대한 대가로 보기에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뇌물수수 혐의는 불기소 처분했다.
반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는 재판에 넘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는 변호사 2명이 비용을 나눠 부담한 경우 이를 청탁금지법상 '동일인'이 제공한 금품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공수처는 두 변호사가 각각 독립적으로 비용을 낸 것이 아닌, 같은 술자리에서 현직 판사를 함께 접대한다는 의사 아래 비용을 분담한 것으로 판단했다. 수사팀은 이 같은 판단이 법정에서 다퉈질 수 있다며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변호사들이 조사 과정에서 직접 '접대를 목적으로 만났다'고 진술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번 기소는 공수처 출범 이후 처음으로 고위공직자범죄 자체가 아닌, '관련범죄'만을 적용해 공소를 제기한 사례이기도 하다.
공수처는 뇌물수수죄는 고위공직자범죄에 해당하지만 청탁금지법 위반은 공수처법상 고위공직자범죄 자체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같은 사실관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관련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만으로 기소했다.
공수처는 이 같은 법리 적용의 적정성을 검토하기 위해 지난 7월 수사심의위원회도 개최했다. 수사심의위에서는 관련범죄만으로도 공수처가 기소할 수 있다는 다수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향응을 제공한 변호사 2명에 대한 처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공수처는 청탁금지법상 민간인인 공여자에 대해서는 직접 수사권이 없다는 입장으로, 다른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처분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앞으로도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 사건을 엄정히 수사해 공직기강 확립에 기여하겠다"며 "향후 공소유지에도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유선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