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 흔한 거짓말이 끝나는 날 [어른의 오답노트]
방전된 체력으로 소파와 물아일체가 되고 싶은 금요일 밤
하지만 "놀아달라"며 매달리는 아이의 그 눈부신 시절은 영원하지 않다
영웅의 망토를 벗기 전, 아들과 보내야 할 찬란한 주말에 대하여
[파이낸셜뉴스] 9월 4일 금요일 밤. 일주일간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린 4050 가장들의 머릿속엔 오직 하나뿐이다.
'이번 주말엔 기필코 소파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현관문을 열자마자 달려 나와 다리에 매달리는 아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는 순간, 그 소박한 계획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아빠, 내일은 나랑 축구하러 갈 거지?"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그래, 내일은 꼭 나가자"라며 영혼 없는 약속을 건넨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조금만 더 크면 자기들끼리 논다고 아빠는 찾지도 않을 텐데, 지금 이 피곤한 시기만 적당히 잘 넘기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이 시간은 아빠의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가장 찬란하고 눈부신 계절이다.
발달심리학자들은 아이가 부모를 세상의 전부이자 무적의 영웅으로 여기는 시기가 생각보다 훨씬 짧다고 입을 모은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르면 10대 초반의 사춘기에 접어드는 순간 아이들의 애착 대상은 부모에서 '또래 친구'로 급격히 이동한다.
자신의 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 헤드폰을 낀 채 나오지 않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제야 아빠들은 서운함을 토로한다.
하지만 시간은 가혹하게도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아빠랑 노는 게 제일 재밌어"라며 땀에 흠뻑 젖은 채 안겨 오던 그 작은 아이는 이미 흔적도 없이 자라버린 후다.
우리가 '피곤하다'며 거실 소파에서 곯아떨어졌던 그 수많은 주말들이, 실은 아이가 아빠라는 영웅에게 손을 내밀었던 마지막 골든타임이었던 셈이다.
물론 40대의 삐걱거리는 무릎과 방전된 체력으로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아들과 놀아주는 것은 극한 직업에 가깝다. 땡볕 아래서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축구공을 쫓아 뛰고, 자전거를 밀어주다 보면 "내가 대체 주말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인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완벽한 휴식을 꿈꿨던 정답지의 기준에서 보면, 이 삶은 분명 피곤한 '오답'이다.
하지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벤치에 주저앉아,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아들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마주할 때 우리는 깨닫는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누군가의 절대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온몸을 던져 함께 땀 흘릴 수 있는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늘 잔인하리만치 짧기에 눈부신 법이다.
9월의 첫 주말을 맞이하는 오늘 밤, 지친 몸을 핑계로 아이의 기대를 외면하지 말자. 훗날 우리가 직장에서 은퇴하고 머리가 희끗해졌을 때,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기억은 통장의 잔고나 회사의 직급이 아닐 것이다.
가을 햇살이 부서지던 어느 주말 오후, 내 품으로 공을 안고 달려오던 아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그날의 흙먼지 냄새. 그것만이 우리가 평생을 꺼내먹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완벽한 위로가 된다.
내일 아침,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아이를 위해 운동화 끈을 단단히 고쳐 매자.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남을 수 있는 시간의 타이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아주 빠르게 줄어들고 있으니까.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