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단에 맞추나"…풀고 조이고 미루는 증시 정책에 개미 '분통' [증시는 왜]
부실기업 퇴출 내걸고 시총 기준 강화…증시 흔들리자 6개월 유예
레버리지 상품 허용 두 달 만에 '겹규제'…거래대금 91.8% 급감
시장 따라 바뀌는 규칙…투자자는 '정책 리스크'까지 떠안을 판
[파이낸셜뉴스] 정부가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을 위해 추진해온 상장폐지 기준 강화를 증시 상황이 악화되자 6개월 미루기로 했다. 투자자 선택권 확대를 위해 도입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는 상장 두 달여 만에 잇달아 규제를 추가했다. 증시 활성화를 내걸면서도 시장 상황에 따라 규제를 강화하거나 예정된 정책을 미루는 일이 반복되면서 자본시장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한국거래소는 내년 1월 시행할 예정이던 상장폐지 시가총액 기준 추가 상향을 6개월 유예하기로 했다. 코스닥 시가총액 기준을 현행 2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높이는 시점이 내년 1월에서 7월로 미뤄진다. 코스피도 현행 3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높이는 시점을 같은 기간 늦춘다.
정부는 최근 기업계에서 코스닥 시황 악화를 고려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한 점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일정 재무요건을 갖춘 기업은 정리매매 없이 코넥스로 이전상장할 수 있도록 하고, 시장 회복에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했다.
하지만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을 통해 국내 증시의 신뢰를 높이겠다며 마련한 로드맵이 시장 상황에 따라 다시 변경되면서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도 불가피해졌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월 저성과 기업의 적시 퇴출을 위해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당시 코스피 시가총액 기준을 50억원에서 2026년 200억원, 2027년 300억원, 2028년 500억원으로 높이고, 코스닥 역시 40억원에서 각각 150억원, 200억원, 300억원으로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3년에 걸쳐 기준을 높인다는 계획이었다.
이후 금융당국은 올해 들어 상장폐지 기준 강화 일정을 앞당겼다. 코스닥의 300억원 기준 적용 시점을 당초 2028년 1월에서 2027년 1월로 1년 앞당겼고, 코스피 역시 500억원 적용 시점을 2028년 1월에서 2027년 1월로 조기화했다. 그러나 최근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내년 1월 예정됐던 추가 상향을 다시 6개월 늦추기로 했다.
상장폐지 기준 유예 결정 전부터 증권가에서는 강화된 기준을 현 시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부실기업 누적으로 시장 신뢰가 저하돼 온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는 긍정적"이라면서도 "변동성과 수급 불균형이 극심한 상황에서 중소형주에 엄격한 상장폐지 잣대를 바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책 방향이 단기간에 달라진 사례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서도 나타났다.
국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지난 5월 27일 처음 상장됐다. 국내외 상장지수펀드(ETF) 간 규제 비대칭을 해소하고 투자자의 상품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급등하고 관련 상품으로 자금이 몰리자 금융당국은 두 달여 만에 규제 강화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지난 7월 31일부터 개인 일반투자자의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기본예탁금을 1000만원에서 현금 3000만원으로 높였다. 주식·ETF·채권 등 대용증권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어 지난달 19일부터 신규 투자자에게 기존 기본예탁금과 사전교육에 더해 모의거래 이수까지 의무화했다.
시장은 빠르게 위축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16종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상장일부터 규제 강화 직전인 7월 30일까지 11조6787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규제가 시작된 7월 31일부터 지난 1일까지는 9629억원으로 91.8% 급감했다.
개인투자자의 움직임도 뒤집혔다. 개인은 상장 이후 7월 30일까지 관련 ETF를 15조원 넘게 순매수했지만 규제 강화 이후에는 순매도로 돌아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고위험 상품에 대한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강화할 필요성은 분명하다"라면서도 "상품을 허용한 직후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는 점에서 정책 설계 단계부터 과열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시장의 방향뿐 아니라 정책 변화까지 투자 판단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환원 확대, 자본시장 체질 개선 등을 통해 국내 증시의 투자 매력을 높이고 가계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최근 정책 흐름에서는 일관된 방향을 읽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 선택권을 확대했다가 시장이 과열되자 진입장벽을 높였고, 부실기업을 신속히 퇴출하겠다며 기준 강화 일정을 앞당겼다가 증시가 흔들리자 다시 늦췄다.
각각의 조치에는 나름의 명분이 있다. 레버리지 상품 규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것이고, 상장폐지 기준 유예는 시장 급락 과정에서 기업들이 일률적으로 퇴출 위험에 노출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문제는 시장이 움직일 때마다 제도가 뒤따라 바뀔 경우다. 투자자는 기업 실적과 금리, 환율, 수급뿐 아니라 향후 어떤 규제가 도입되고 이미 발표된 제도가 언제 변경될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특히 해외주식 투자가 개인투자자의 주요 투자처로 자리 잡으면서 국내 증시도 투자자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단기적인 증시 부양책보다 일관된 정책을 통해 시장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국내 시장으로 자금을 유도하는 정책 못지않게 투자자가 장기간 신뢰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경우 국내 증시로의 자금 유입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최두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