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증원 앞두고 인선 파열음…제청권 vs 임명권 힘겨루기 [김규성의 이슈+]
'대법관 제청' 대립의 정치학
청와대-대법원 헌법 104조 다르게 해석
"제청권 헌법에 보장" "임명권 뒷받침"
대법관 26명 시대 맞아 '룰의 전쟁' 시작
인선 주도권 놓고 제청권·임명권 대립
일부선 이 대통령 '코트패킹' 의혹 제기
"재제청 위헌" 국힘 권한쟁의 청구 검토
노태악 前대법관 퇴임 후임자 인선 난망
정치력 부재 속 국민기본권 침해 우려
"제청·임명권 틈새 정치적 협의로 풀어야"
지난 3월3일 노태악 전 대법관이 퇴임했다. 6개월 이상 흐른 6일 현재에도 후임자 인선은 진행 중이다. 아니 멈췄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대법관 후보자를 놓고 청와대와 대법원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서다.
대법원은 최근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인 손봉기 후보자를 청와대에 제청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임명동의안을 국회로 보내지 않고 재제청을 요청했다. 사실상 다른 후보자를 제청해 달라는 의미다. 양측의 충돌이다.
대법관 한 자리를 놓고 청와대와 대법원은 왜 이렇게 대립할까. 대법관 제청을 놓고 청와대와 대법원, 정확하게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갈등은 과거에도 있었다. 양측이 한 발씩 양보, 정치적 봉합을 하는 게 관행이었을 뿐이다. 이번 경우처럼 파열음이 공개되고 오랜 기간 이어진 사례는 없다. 사법부의 대법관 임명 제청을 대통령이 거부한 것은 이승만 정부 시절인 1958년 이후 처음이다.
■‘헌법 104조 제2항'놓고 '해석 전쟁'
조희대 대법원장이 노 전 대법관 후임을 청와대에 제청한 시점은 지난 8월18일이다.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은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조 대법원장이 헌법 제104조 제2항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기만료로 퇴임한 노 전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으로 손봉기 부장판사를, 임기만료로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으로 김성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각각 임명제청한다고 밝혔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올해 1월 구성된 걸 감안하면 노 전 대법관 후임 제청까지 걸린 기간은 209일이다. 역대 대법원장들은 청와대와 대법관 최종 후보를 물밑에서 조율한 뒤 제청하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7개월간 조율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법원행정처 보도자료에는 이와 관련된 문구는 없었지만 청와대와 이견이 있었던 손 부장판사를 대법원이 후보자로 제청한 것은 사실상 합의 없는 '독자제청'이었다.
독자제청의 근거는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로 규정된 헌법 제104조 제2항이었다. 헌법이 보장하는 대법원장 제청권을 행사했다는 의미다. 제청권, 동의권, 임명권을 각각 동등한 권한으로 해석했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도 이와관련 국회에서 "대법원장은 독립적 판단에 따라 제청하고 대통령과 국회는 각각 임명권과 동의권을 행사하면 된다"고 언급했다.
반면 지난달 28일, 김성수 부장판사는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청했지만 손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재제청을 요청한 청와대의 해석은 달랐다. 청와대는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민의 대표자이고,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 기관"이라며 "국민 주권의 원리에 비춰볼 때, 제청권은 임명권을 대체하거나 무력화하는 권한이 아니라 임명권이 올바르게 행사되도록 뒷받침하는 권한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했다. 선출권력인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우선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청와대는 관련 법률 검토를 거친 결론이라고도 했다.
■인선 충돌의 이면…'대법관 증원' 선점
대법관 한 자리를 놓고 정치적 부담 속에서 양측이 충돌을 벌이는 이유는 향후 대법관 증원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많다.
대법관 정원은 지금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이다. 하지만 2028년부터 3년간 4명씩 늘어나 26명이 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사법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14명이던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되면 이 대통령은 임기 중 퇴임하는 기존 대법관 10명의 후임과 새로 만들어지는 12개 자리를 합쳐 최대 22명을 임명하게 된다. 임기 말에는 이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은 22명, 전임 대통령 또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한 대법관은 4명인 '22대 4'구도가 만들어진다. 결론적으로 대법관 26명 시대를 맞아 인선 주도권을 놓고 대법원과 청와대가 각각 제청권, 임명권을 앞세우면서 대립을 펼치고 있다는 게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부에서는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와 연계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공직선거법, 위증교사 등 5개 재판은 대통령 취임 후 심리가 중단된 상태다. 임기 종료 뒤 재판이 재개되면 일부 사건은 대법원의 최종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권력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법원 구성을 바꾸는 '코트패킹'의혹이 있다는 주장이다.
충돌의 무게는 2년 후인 오는 2028년 강도가 더 세질 가능성이 높다. 대법관 증원 구도를 보면 그렇다. 여야의 움직임도 이를 방증한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헌법상 대법원장 제청, 대통령 임명, 국회 동의만 규정돼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반려(재제청)는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대법원은 청와대와 조율하라'에 방점이 찍힌다. 청와대와 조율 없이 또 다른 대법관 후보를 서면 제청하거나, 대법관후보추천위를 새로 구성하면 '대법원장 탄핵' 목소리를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승원 의원은 '서면 제청' 사태 이후, 조 대법원장의 법사위 증인 출석을 요구하는 등 압박을 하기도 했다.
■대법관 증원이 키운 '견제와 균형' 시험대
청와대 재제청으로 공은 사법부로 넘어갔다. 법원 내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새롭게 대법관 후보추천위를 만들어 제3의 후보를 제청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추천위를 구성하고,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당 추천위는 해산된 것으로 규정한 법원조직법 41조의 2항 때문이다.
이번 대법관 선임 사례가 이후 '룰'이 될 수 있어 대법원으로서는 물러서기 힘든 상황에 몰려있다. 조 대법원장은 2027년 퇴임하지만 대법관 12명 증원은 2028년부터 시작된다. 청와대가 지금 대법원장의 독자적 제청권을 문제 삼아 대통령의 인선 개입 폭을 넓히는 선례를 만들 경우, 이후 22명의 인선을 진행하면서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후보 선택에 사실상 사전 승인권을 행사했다는 비판은 별개다.
다만 이렇게 할 경우, 재제청을 둘러싼 갈등이 대법관 인선을 넘어 행정부와 사법부의 정면충돌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의 독립성과 대표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협의 결렬 때 후속 절차를 법률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관 공석이 길어지면 사건 처리 부담은 잔여 대법관에게 분산된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법과 법 사이의 영역은 정치 몫"이라며 "여기에 해법이 있다"고 말했다. 제청권과 임명권은 법으로 명시돼 있지만 그 틈새를 정치적 협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 교수는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려고만 해서는 해법을 찾기 힘들 것"이라며 "결국 피해는 국민 몫인 만큼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만나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주요국은 정치적 견제 장치를 유지하면서도 재판기관 공석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 선출이 지연될 경우를 대비한 보완 절차를 두고 있다.
참여연대는 "대법원에 계류된 사건은 심각하게 적체되어 있고,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역시 지속적으로 침해되고 있다"며 "대법관 한 명의 공백도 국민 기본권과 직결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mail protected] 김규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