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헐값에 넘길라"…'K-베어허그'의 불편한 이면 [fn마켓워치]
저PBR 압박 취지는 좋지만 '경영권 방어장치 없는' 한국
英 베어허그 급증에 해외자본 상장사 사냥…증시 공동화 우려도
美는 포이즌필·英은 28일 룰…공격수단과 방어권 균형 필요
[파이낸셜뉴스] 저평가된 상장사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다며 추진되는 '한국형 베어허그(Bear Hug)'가 자칫 국내 기업을 해외 자본의 손쉬운 인수합병(M&A)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수제안을 공개해 이사회를 압박하는 공격수단은 강화하면서 이에 대응할 경영권 방어장치는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M&A 과정에서 주주에 대한 정보 제공과 이사회 책임을 강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주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개매수에 대해 대상회사 이사회가 의무적으로 의견을 밝히도록 하고 중요한 인수제안이 주주에게 알려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제도의 '비대칭'이다. 베어허그는 인수자가 이사회가 거부하기 어려운 프리미엄을 제시한 뒤 이를 공개해 주주가 직접 경영진을 압박하도록 하는 M&A 전략이다. 저PBR 기업의 가치 제고를 압박하는 효과가 있지만 반대로 해외 PEF나 경쟁기업이 일시적으로 저평가된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흔드는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올해 영국에서는 이런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1년간 영국 상장기업을 상대로 이뤄진 베어허그 12건 가운데 8건의 인수자가 해외 기업이었다. 올해 2·4분기에만 시장가격보다 20% 이상 높은 가격을 제시한 공개·비우호적 인수제안 규모가 440억파운드에 달했다.
저평가된 영국 기업을 해외 PEF와 전략적투자자(SI)가 잇따라 사들이면서 자국 자본시장에서는 오히려 상장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영국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M&A 규모는 1820억달러로 지난해 전체 1290억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해외에서는 베어허그와 함께 '경영권 방어장치'도 작동한다. 미국에서는 포이즌필이 대표적이다.
2011년 미국 에어가스는 경쟁사 에어프로덕츠가 주가보다 61% 높은 인수가를 제시했지만 기업가치에 못 미친다며 포이즌필로 방어했고, 델라웨어 법원도 이를 인정했다. 영국은 인수 의향 공개 후 28일 안에 정식 제안하거나 철회하는 '제안 아니면 철회'(put up or shut up)제도를 둬 베어허그로 장기간 경영권을 흔드는 것을 제한한다.
베어허그가 제도화되면 국내에서도 낮은 PBR과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배지분을 가진 기업들이 잠재적인 M&A 대상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IB업계의 중론이다.
재계에서도 기업가치 제고라는 취지와 별개로 공격수단과 방어수단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베어허그 도입 논의 과정에서도 경영계에서는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함께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IB업계 고위 관계자는 "저평가를 방치한 기업에 시장 규율이 필요하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모든 프리미엄 인수제안이 장기 주주가치에 도움이 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해외처럼 이사회가 기업의 장기 가치와 전략적 중요성을 판단해 대응할 수 있는 방어수단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격할 권리만 열어주고 방어할 수단은 그대로 둔다면 베어허그가 밸류업 수단이 아니라 저평가된 한국 기업을 겨냥한 M&A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김경아 김현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