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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 1974년 영부인 피격 그날, 사라진 두 발…시대극 명가의 이름값 톡톡[이 영화]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유해진 박해진 이민호

배우 유해진(왼쪽부터)과 박해일, 이민호. 뉴스1
배우 유해진(왼쪽부터)과 박해일, 이민호. 뉴스1
허진호 감독 . 뉴스1
허진호 감독 . 뉴스1
영화 '암살자(들)' 시사회. 배우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가 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암살자(들)'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암살자(들)' 시사회. 배우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가 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암살자(들)'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1.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제29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낭독하던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재일교포 청년 문세광이 권총을 발사했다. 박 대통령은 목숨을 건졌지만 영부인은 머리에 총상을 입고 그날 오후 숨졌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인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식이 있었다. 김종필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했고, 개통식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축소 진행됐다.

#2. 영부인저격사건으로부터 70일 뒤인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 180여명은 중앙정보부의 언론 통제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에 이어 1974년 1월 유신헌법 반대 활동을 금지한 긴급조치 1호가 발동되면서 당시는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던 때였다.

#3. 문세광은 사건 발생 65일 만인 1974년 10월 19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한국 수사당국은 문세광이 조총련에 포섭돼 북한의 지령으로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일본 수사당국은 북한·조총련의 직접 지령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박정희 정권에 반감을 품은 문세광의 단독범행으로 판단했다.

#4. 2005년 사건을 둘러싼 외교문서 3000여쪽이 공개됐지만 의문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영부인이 누구 총에 맞았는지다. 현장에서 확인된 총격은 모두 7발이었지만, 문세광이 실제 쏜 탄환은 4발로 결론났다. 또 경호원이 응사한 '세 발' 가운데 한 발이 숨진 합창단원 장봉화양에 맞았다면 나머지 두 발은 어디로 갔는가?

영화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 등 한국 근현대사를 스크린과 OTT에 성공적으로 펼쳐온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올 추석 허진호 감독의 신작 '암살자(들)'로 다시 한번 시대극 명가의 입지를 굳혔다.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에서 출발한 팩션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광복절 생중계 현장에서 영부인이 저격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용의자는 현장에서 체포된다. 사건은 빠르게 종결되지만, 현장 경호를 담당했던 형사 철구(유해진)와 사건의 이면을 응시하는 신문사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그날의 혼란을 목격한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은 발표된 수사 결과에 의문을 품고 사건의 진실을 좇기 시작한다.

입체적으로 그려낸 1974년 그 시대의 풍경과 사람

영부인 저격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사건의 전모를 잘 알지 못하는 오늘날의 관객을 그날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마치 역사의 한복판에 들어선 듯한 생생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중앙정보부의 언론 통제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들의 분투와 같은 해 발표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연결해 1974년의 한 시대의 풍경을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영화는 이미 범인이 알려진 사건을 다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형사와 두 기자를 중심으로 흩어진 사건의 파편을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국가가 발표한 '사실'과 현장에서 목격한 '진실' 사이의 간극을 파고든다. 덕분에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그날의 사건을 다시 찾아보게 만든다.

초반부는 형사 철구의 시선을 따라 미스터리 추적극의 긴장과 재미를 전한다. '왕과 사는 남자'까지 다섯 편의 천만 영화를 보유한 유해진은 우직한 경찰이 위험한 진실의 추적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특유의 능청스러운 생활 연기와 묵직한 집중력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중반부터는 재환(박해일)과 영일(이민호)을 중심으로 한 기자들의 이야기가 뜨겁게 펼쳐진다. 중앙정보부의 압력과 내부의 만류 속에서도 이들은 기자정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박해일은 낮고 절제된 목소리와 단단한 눈빛으로 권력의 압박에 맞서는 사회부장의 무게를 설득력 있게 전한다.

극중 재벌집 막내 아들 출신인 신입 기자 영일 역 이민호는 젊고 거침없는 에너지로 극에 활기를 더한다.

기자라는 직업이 '기레기'라는 말로 손쉽게 폄하되는 오늘날, 이들의 모습은 점차 퇴색해가는 직업적 소명의 가치를 환기하며 언론의 역할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 냄새나는 골목과 신문사 편집국...'올 로케이션' 촬영

'암살자(들)'은 모든 장면을 실제 공간에서 촬영하는 '올 로케이션' 방식을 택해 세트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생생한 질감과 공간의 깊이를 살리며 보는 재미를 더한다.

경찰을 아버지로 둔 철구의 아이들이 마루에 앉아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고 좁은 골목을 누비며 노는 모습, 철구의 아내가 집 한편에 세 들어 사는 신혼부부를 살뜰히 챙기는 장면은 이웃 간의 정이 살아 있던 시절의 생활상을 보여주며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취재 현장의 풍경도 지금과 사뭇 다르다.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선 기자들이 전화기를 붙들고 현장 상황을 설명하고, 선후배들이 이를 받아 적는 모습부터 술에 취한 화백이 기자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다가 4컷 만평을 완성하는 모습까지 디지털 이전 신문사의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권력의 폭력이 일상까지 파고든 시대의 어두운 얼굴도 담는다. 편집국에 상주하는 중앙정보부 요원의 감시를 피해 정보를 주고받는 기자들의 모습은 일종의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 이어 문제의 기사가 지면에 실린 사실을 확인한 뒤 언어와 물리적 폭력을 서슴지 않는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모습은 당시 언론이 마주했던 억압과 공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제작진은 애초 신문사 내부와 철구의 집 등 주요 공간을 실내 세트로 만들 계획이었지만, 장소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실제 공간을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후 전국 곳곳을 돌며 1960~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과 골목을 찾아냈고, 낡거나 방치된 공간을 극 중 인물들의 삶에 맞게 재구성했다. 덕분에 영화 속 1974년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물들의 감정과 사건의 긴장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기능한다.

여기에 배성우, 엄지원, 박지환, 박훈, 류혜영, 장률, 최유리, 류경수, 김대명, 심은경, 박해준, 박성훈, 오정세, 신현빈, 정우성 등 주조연급 배우들이 크고 작은 배역으로 잇달아 등장하는 것도 볼거리다. 짧은 순간에도 각자의 존재감을 새기며 1974년의 풍경을 촘촘하게 채운다. 12세 이상 관람가. 23일 개봉.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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