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재테크

미국 주식은 10년 '존버'한다면서… 내 몸은 왜 하루를 못 버틸까 [어른의 오답노트]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10년 뒤의 수익을 믿고 주식 창의 파란불 앞에서는 그토록 의연하면서, 정작 당장 내일 아침 출근길엔 방전된 체력으로 헐떡이는 4050 가장들. 포트폴리오의 '안전마진'은 1원 단위까지 집요하게 계산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는 단 1%의 여유조차 남기지 못한 이 시대 중년 남성들의 서글픈 가치투자에 대하여.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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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9월 8일 화요일 밤 10시 30분. 본격적으로 한 주의 피로가 누적되기 시작하는 시간이지만, 미국 주식 시장 개장을 알리는 알람과 함께 4050 남성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예리해진다.

남들이 하루아침에 수백 퍼센트가 오르는 밈(Meme) 주식에 열광하며 불나방처럼 뛰어들 때도, 이들은 구글이나 테슬라, 스페이스X같은 미래 가치주들의 재무제표를 묵묵히 들여다보며 매수 타이밍을 잰다.

이들의 투자 철학은 지독하리만치 엄격하다. 아무리 매력적인 주식이라도 쪼개서 사는 소수점 거래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뚝심 있게 '온주(Whole Share)' 단위의 매수만 고집한다. 원·달러 환율이 1350원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손이 근질거려도 절대 환전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인내심마저 갖췄다. 포트폴리오 안에서 이들은 그 어떤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보다 이성적이고 차가운 가치투자자다.

◇ 투자의 제1원칙, 내 계좌를 지키는 '안전마진'

가치투자의 창시자 벤저민 그레이엄은 성공적인 투자의 핵심으로 '안전마진(Margin of Safety)'을 꼽았다. 주식의 진짜 가치보다 훨씬 싼 가격에 주식을 사들여, 시장에 예상치 못한 폭락이 오거나 내 계산이 틀렸을 때 파산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여유 공간'을 확보하라는 뜻이다.

화요일 밤 스마트폰을 쥔 우리는 이 안전마진을 1원 단위까지 집요하게 계산한다. 돌발 악재가 터져도 계좌가 깡통을 차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리스크를 쪼개고 또 쪼개며 완벽한 방어막을 구축한다.

◇ 내 삶의 계좌엔 왜 여유 공간이 없을까

하지만 매수 주문을 걸어두고 스마트폰 화면을 끄는 순간, 기묘하고도 뼈아픈 모순이 우리를 덮친다. 철두철미했던 투자자는 온데간데없고, 당장 내일 아침 출근을 걱정해야 하는 방전된 중년 남성만 남는다.

직장에서는 실적과 후배들의 치고 올라옴을 방어하느라 120%의 에너지를 쥐어짜 내고, 퇴근 후에는 가족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남은 0%의 체력마저 영혼까지 긁어모아 쓴다. 돌발적인 스트레스나 피로가 몰려왔을 때 나를 보호해 줄 '체력적, 심리적 여유 공간(안전마진)'은 단 1%도 남아있지 않다.

주식 계좌는 그레이엄의 철학대로 안전하게 지켜내고 있으면서, 정작 '나'라는 본체의 삶은 매일 아침 증거금 부족으로 인한 마진콜(강제 청산) 위기에 아슬아슬하게 내몰려 있는 셈이다.

◇ 나를 위해 20%의 여백을 남겨둘 위대한 용기

계좌의 수익률이 우상향하고 통장 잔고가 쌓인다 한들, 그 과실을 누려야 할 나 자신이 깡통 계좌처럼 메말라간다면 과연 성공한 투자라 할 수 있을까.

이기적인 아빠나 불성실한 직장인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길고 혹독한 장기 투자 레이스에서 중도 하차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 멘탈과 체력에도 최소한의 안전마진을 설정해 두어야 한다.

화요일 밤, 쉴 새 없이 깜빡이는 붉고 푸른 호가창에서 잠시 눈을 떼자. 그리고 남들을 위해 100%를 갈아 넣던 삶에서 벗어나, 오직 나만의 숨통을 틔울 20%의 여백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보자. 팍팍한 현실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고 버텨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흔들리는 4050 가장들이 실천해야 할 가장 위대하고 가치 있는 투자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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