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정치

이스라엘 'E1'이 서방 갈랐다…유럽·캐나다 제재, 美는 보복론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서안 남북 연결 끊을 정착촌 확대에 英 "인종청소" 규정
이스라엘 英영사관 폐쇄 맞불…주이스라엘 美대사 "경제적 대응" 경고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지구 정착촌 문제가 서방 동맹의 새로운 균열선으로 떠올랐다. 영국이 정착촌과의 무역을 끊겠다고 나서자 프랑스와 캐나다 등이 가세했고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에 나섰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최대 우방인 미국에서도 영국에 대한 경제적 대응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중동의 갈등이 유럽과 캐나다, 미국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캐나다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캐나다가 이스라엘 문제에서는 미국이 아닌 영국·프랑스와 보조를 맞추면서 서방 내부의 복잡한 외교 지형이 드러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 등 12개국은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정착촌 확대에 대응해 새로운 무역 제한 조치를 시행하거나 이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왜 서안지구인가…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의 핵심

이번 갈등의 핵심인 서안지구는 요르단강 서쪽에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해왔다. 국제사회 대부분은 이곳에 건설된 이스라엘 정착촌을 국제법상 불법으로 보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스라엘 정부가 정착촌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유럽이 문제 삼는 곳은 동예루살렘과 대규모 이스라엘 정착촌인 마알레 아두밈 사이의 'E1'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이곳에 수천가구 규모의 신규 주택 건설을 승인했다.

E1은 단순한 주택개발 지역이 아니다. 이곳에 이스라엘 정착촌이 본격적으로 들어서면 팔레스타인이 향후 국가를 세울 핵심 영토인 서안지구의 북부와 남부 간 연결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게 유럽 국가들의 우려다.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의 연결도 어려워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국가로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의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의 강경파들은 이런 정착촌 확대를 사실상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주권 확대 과정으로 보고 있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정부의 서안지구 정책을 '혁명'이라고 표현하면서 자신의 목표가 이 지역에 대한 완전한 이스라엘 주권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7월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사실상 이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이 행동에 나선 이유다. 에드 밀리밴드 영국 외무장관은 정착촌 확대를 '인종청소'라고 규정하고 두 국가 해법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의 제재는 정착촌과의 직접 무역뿐 아니라 정착촌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 기업까지 겨냥한다.

이스라엘 보복하자 미국까지 등장

이스라엘은 즉각 맞불을 놨다. 팔레스타인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동예루살렘 주재 영국 영사관을 폐쇄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가자지구 전후 조정센터에서 영국 대표들을 배제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유럽과 이스라엘의 충돌이다. 그러나 미국이 등장하면서 갈등의 성격이 달라졌다.

마이크 허커비 주이스라엘 미국대사는 영국의 발표에 앞서 BBC에 영국이 제재를 강행하면 미국이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기업들이 미국 일부 주에서 사업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서안지구 정착촌을 둘러싼 외교 갈등이 미국과 영국 사이의 통상 문제로 번질 가능성까지 생긴 것이다.

다만 미국 정부가 영국에 대한 보복을 공식 결정한 것은 아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이 문제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며 "서안지구에서 폭력이나 분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은 발표에 앞서 트럼프 행정부에도 계획을 통보했다.

美와 무역전쟁 캐나다는 유럽과 한편

이번 사태에서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캐나다다.

캐나다는 미국과 무역 갈등이 격화되는 와중에 이스라엘 문제에서는 영국·프랑스와 공동전선을 형성했다. 미국과 경제적으로 가장 밀접한 국가 가운데 하나인 캐나다가 통상에서는 미국과 충돌하고 외교 현안에서는 유럽 주요국과 행동을 같이하는 장면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AP통신은 이날 미·캐나다 무역갈등을 분석하면서 캐나다 역사학자 로버트 보스웰의 말을 인용해 "카니와 캐나다는 트럼프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의 압박이 오히려 다른 국가들에 미국으로부터 더 거리를 둬야 한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적 충격만 보면 이번 조치는 제한적이다. 영국 의회가 추산한 영국과 서안지구 정착촌 간 무역 규모는 약 3800만파운드(약 5140만달러)에 그친다. 그러나 외교적 의미는 작지 않다. 영국·프랑스·캐나다가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정책에 맞서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미국에서는 이들 동맹국에 대한 경제적 대응 가능성까지 거론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영토 문제였던 서안지구가 이제 미국과 유럽, 캐나다까지 갈라놓을 수 있는 서방 동맹의 새로운 균열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사진=뉴시스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사진=뉴시스

[email protected] 이병철 특파원


#균열선 #요르단강 #이스라엘 #동맹 #서안지구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