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천재를 찾지 마라, 판을 짜는 리더를 세워라 [김문경의 리더십테크](26)
[파이낸셜뉴스] "실리콘밸리에서 AI 천재 몇 명만 영입하면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올해 전사차원의 S사 업무설계 컨설팅을 10개월간 진행하면서 'AX 전환과 조직 혁신'을 논하는 자리에서 C레벨 경영진에게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다. 경쟁사의 AI 도입 발표가 연일 쏟아지고 있고, 새 모델의 성능 지표가 매주 경신될 때, 조직 내부에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으면 자연스레 외부의 특급 구원투수를 찾게 된다. 조급한 심정은 십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명백히 과녁이 틀렸다.
초거대 파운데이션 모델을 밑바닥부터 개발하고 훈련할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를 통틀어 손에 꼽힌다. 나머지 절대다수 기업은 오픈 AI, 구글, 앤트로픽이 서비스 형태로 내놓은 완성형 도구를 구독해 쓴다. 그렇다면, 승부처는 애초에 기반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역량이 아니라, 똑같이 주어진 도구를 누가 더 기민하게 자기 사업의 경쟁 우위로 치환해 내느냐에 있다. 글로벌 리더십 자문사인 하이드릭앤스트러글스(H&S)의 최고 경영자인 톰 모너핸은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던진 메시지도 정확히 이 지점을 겨누고 있다.
AI를 직접 만드는 곳은 소수 빅테크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가져다 쓰게 되므로, '시장의 AI를 비즈니스 무기로 바꿔낼 리더가 있느냐'가 진짜 승패를 가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H&S가 국내 C레벨 임원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9명 가까이 이미 생성형 AI를 실무에 도입했다고 답했다. 반면 2026년 글로벌 CEO·이사회 조사에서 AI가 몰고 올 변화를 조직 차원에서 장악할 수 있다고 확신한 리더는 10명 중 4명에 그쳤다. AI 도구는 이미 현장에 들어왔지만, 그 도구를 쥐고 싸울 리더십은 여전히 준비되지 않은 셈이다.
이 거대한 단절은 역사적으로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스탠퍼드대학교 경제사학자인 폴 데이비드는 19세기 말 공장들이 증기기관을 걷어내고 최신 전기 모터를 들여왔음에도, 생산성이 가시적으로 폭발하기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음을 밝혀냈다. 전기의 파괴적 잠재력은 단순히 모터를 공장에 들여놓은 순간이 아니라, 공장의 층고를 낮추고 일관 작업 라인에 맞춰 기계 배치와 노동 프로세스를 통째로 뜯어고쳤을 때 비로소 폭발했다.
같은 대학의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는 이를 범용 기술의 '생산성 J커브'로 설명한다. 혁신 기술에 투자한 직후에는 프로세스 재설계와 학습 같은 보완 투자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에 생산성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하락한다. 그 보완적 투자가 임계점을 넘어 쌓여야 비로소 성과의 수직 상승이 일어난다. 기술은 돈을 주고 사 올 수 있지만, 기술을 담아낼 '보완적 투자'는 결코 외부에서 사 올 수 없다. 조직 내부의 리더가 일의 방식을 직접 바꿔야만 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산업 현장에서 수많은 AI 투자가 좌초하는 지점 역시 기술이 아니라, 바로 이 보완적 투자의 부재다. 수억 원을 들여 전사 솔루션을 깔아주어도 보고서는 여전히 과거의 아날로그식 결재 라인을 맴돌고, 의사결정은 정밀한 데이터 대신 경험과 관행에 기댄다.
"비싼 도구를 깔아줬으니 알아서 혁신하라"며 기술 뒤로 물러서는 리더 밑에서, 고가의 도구는 모니터 구석의 화려한 장식품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실리콘밸리에서 거액의 몸값을 주고 데려온 엔지니어 역시 기존 도메인 전문가들의 보이지 않는 텃세와 관료주의적 절차 속에서 소진되어 떠나갈 뿐이다. 천 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뛸 판이 없어서 실패하는 것이다.
반면 국내에서도 기술 도입에 앞서 일의 판을 먼저 다시 짠 성공 사례가 있다. 한국IDC가 국내 조직들의 생성형 AI 적용 현황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LG전자는 제품 기획자와 사업 개발자들이 전문 코딩 지식 없이도 수백 테라바이트(TB)에 달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스스로 분석할 수 있도록 SQL 코드를 자동 생성하는 사내 AI 시스템을 구축했다. 외부에서 데이터 분석가를 대거 채용해 배치하는 대신, 데이터 분석을 의뢰하고 마냥 대기하던 현업 기획자가 직접 데이터를 다루도록 업무의 순서와 권한을 통째로 바꾼 것이다. 보고서가 지적하듯 성공한 조직들의 공통점은 최신 범용 모델을 서둘러 붙이는 전시성 사업이 아니라, '어떤 업무의 병목을 풀기 위해 어떤 데이터를 연결할 것인가'라는 업무 프로세스의 판을 먼저 정밀하게 짠 데 있었다.
그렇다면 경영자가 던져야 할 질문은 자명해진다. "어디서 AI 천재를 모셔 올 것인가"라는 기술 조달형 질문에서, "우리 리더들은 AI로 싸울 판을 짤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리더십 시스템 질문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조직에 절실한 인재는 코드를 치는 기술자가 아니라, 기술과 사람, 그리고 비즈니스의 접점을 찾아내 일의 흐름을 다시 정의하는 '판을 짜는 일의 설계자'다.
설계자로서의 리더에게는 세 가지 차원의 정밀한 설계 역량이 요구된다.
첫째는 사업의 가치 사슬을 해체하고 재배치하는 '프로세스 설계력'이다. 데이터 취합과 패턴 분석, 초안 작성처럼 AI가 탁월하게 처리하는 영역과, 복잡한 맥락 판단과 윤리적 검증, 정서적 소통처럼 인간이 반드시 책임져야 할 영역을 선명하게 가려내고 다시 엮어내는 눈이다.
둘째는 구성원의 심리적 마찰을 줄이는 '환경 설계력'이다. 신기술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고용 불안과 피로감을 낳는다. 리더가 AI를 평가와 감원의 칼날이 아닌 역량을 증폭시키는 지적 파트너로 규정하고, 새로운 도구를 활용한 과감한 실험 과정의 오류를 책망하지 않을 때 비로소 현장의 자발적 시도가 싹튼다.
셋째는 외부 기술 인재와 내부 현업 전문가를 융합시키는 '문화적 안착(Onboarding) 설계력'이다. 기술의 언어와 비즈니스의 언어가 부딪힐 때 리더가 그 사이를 통역하고, 양자가 공동의 사업 성과를 향해 결합하도록 가교를 놓아야 한다. 자신이 공들여 만든 모델이 실제 현업의 매출과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는 효능감을 맛보지 못한 인재는 결코 조직에 뿌리내릴 수 없다.
AI 시대의 인재 전략은 밖에서 완성형 부품을 사 오듯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그가 역량을 펼칠 사업적 맥락과 조직적 토양이 없다면 비싼 수업료만 치르고 끝난다. 외부에서 들여온 도구를 실질적인 비즈니스 임팩트로 증명해낼 최종 책임자는 바깥의 천재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의 맥락을 쥐고 있는 내부 리더들이다.
이번 주, 거창한 신기술을 주문하기에 앞서 팀장들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 팀 업무 가운데 AI를 중심에 두고 흐름을 완전히 바꿔야 할 프로세스는 무엇이며, 그 일의 설계를 책임질 리더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실리콘밸리의 천재를 통째로 데려와도 세울 판이 없다. 리더가 일의 판을 새로 짜지 않는 한, AI는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값비싼 클라우드 비용 청구서로 남을 뿐이다.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