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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사비 검증 23조인데...사후 관리도, 법적 책임도 없다

권준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올해 검증 규모 4조 훌쩍
조합원 권익 보호 의구심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 조건
하나만 해당해도 검증 받아야
5년간 감액 권고 98.9% 달해
사후 관리 없어 감액 '깜깜이'

지난달 13일 서울시내 구주택 밀집지역 모습. 뉴시스
지난달 13일 서울시내 구주택 밀집지역 모습. 뉴시스
[단독] 공사비 검증 23조인데...사후 관리도, 법적 책임도 없다

[파이낸셜뉴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2022년부터 올해 8월까지 약 5년 동안 23조원이 넘는 국내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을 했지만, 그 결과가 실제 현장에 반영됐는지 확인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4조원 넘게 공사비 검증을 하는 만큼 사후 관리 장치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도 검증 규모 4조원 돌파
10일 파이낸셜뉴스가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규모는 4조2196억원으로 4조원을 넘어섰다. 공사비 검증은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을 상대로 시공사가 공사비를 부당하게 올리는 것을 막고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2019년 도입된 제도다.

2022년 2조1188억원이던 이 규모는 2023년 3조282억원, 2024년 4조7009억원, 2025년 9조970억원으로 늘었다. 올해가 아직 4개월여 남은 만큼 전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검증 완료 건수도 오름세다. 2022년 32건, 2023년 30건, 2024년 36건으로 횡보하던 완료 건수는 2025년 52건으로 크게 늘었고 올해도 29건을 기록했다.

검증 규모가 23조원을 넘어섰지만 그 결과가 실제 계약에 반영됐는지 확인한 사례는 없다. 사후 관리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 보니 검증을 받은 사업지가 최종 공사비를 어떻게 조정했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제도 도입 취지인 '조합원 권익 보호'가 충분히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수료는 쌓여...5년 180억원
한국부동산원은 "검증 이후 공사계약 결과에 대한 별도의 제출·관리 규정이 없어 관련 자료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규정 미비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현행법상 공사비 검증은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 의무 사항인 만큼 제도 도입 시기부터 관련 규정을 함께 마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공사비 검증을 맡고 있지만 검증 의뢰는 한국부동산원에 집중돼 있다. 검증 수수료 수입도 매년 늘어 지난해 65억원을 포함해 최근 5개년 동안 180억원을 넘어섰다. 올해도 8월까지 32억원 이상을 받았다.

강 의원은 "제도 도입 5년이 지나도록 23조원이 넘는 공사비 검증을 해놓고 실제 공사비에 얼마나 반영됐는지 단 한 건도 확인하지 않았다면 이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이라며 "한국부동산원은 검증 실적만 쌓을 것이 아니라 감액 권고가 실제 계약에 얼마나 반영됐는지까지 추적·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이런 문제점들을 알고 있다"며 "현재 관련 내용(사후 관리)을 담은 개정안이 본회의를 앞두고 있어서, 빠르게 통과되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독] 공사비 검증 23조인데...사후 관리도, 법적 책임도 없다

검증 미이행에도…"벌칙 마련 無"
현행법상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경우는 조합원 요청, 상황에 따른 공사비 증액비율, 검증 후 추가 증액 발생 등 크게 3가지로 나뉜다. 3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만 해당해도 생기는 의무다. 하지만 이렇게 받은 공사비 검증 결과는 따르지 않아도 별도 처벌 규정이 없다. 검증은 의무지만 결과 이행은 권고에 그쳐 구속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에 따르면 △토지등소유자 또는 조합원 20% 이상이 요청하는 경우 △시공사 선정 시점에 따라 공사비가 10% 또는 5% 이상 오를 경우 △검증 완료 후 공사비가 3% 이상 증액되는 경우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공사비 검증을 받아야 한다.

가장 복잡한 것은 두 번째 경우다. 한국부동산원 공사비검증 접수시스템에 따르면 사업시행인가 전 시공사를 선정한 사업은 선정 당시보다 공사비가 10% 이상 올라가면 검증 대상이 되지만, 사업시행인가 후 시공사를 선정한 사업은 5% 이상만 올라가도 검증을 받아야 한다. 가령 공사비가 1조원인 사업이라면 인가 전 시공사를 선정한 곳은 1조1000억원 이상, 인가 후 선정한 곳은 1조500억원 이상이 되면 검증 대상이 되는 방식이다.

문제는 검증은 현행법에 의무로 규정돼 있지만 결과 이행은 권고 사항이라는 점이다. 한국부동산원이 공사비를 낮춰 권고하더라도 조합이 총회 의결을 거쳐 공사비 인상을 결정하면 현행법상 이를 제재할 근거가 없다. 이날 기준 한국부동산원 홈페이지에는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의 미이행에 대해 별도의 벌칙은 마련돼 있지 않다"며 "공사비 검증 결과 그대로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99%가 감액 권고, 반영 여부는 미집계
검증을 신청한 사업지 대부분은 '감액 권고'를 받는다. 한국부동산원이 최근 5년간 검증한 사업지 179곳 가운데 감액 권고를 통보한 곳은 인천 1곳, 대전 1곳을 제외한 177곳이다. 비율로 환산하면 98.9%에 해당한다. 다만 이 권고가 실제 계약금액 인하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집계는 공개돼 있지 않다.

공사비 증액 협상의 한 축인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비는 조합과 소통해서 정한다고 생각하지 한국부동산원에 검증을 받았다고 여기에 따라야 한다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며 "현장에서는 사실상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제도"라고 말했다. 제도가 도입된 지 6년여가 지났지만 공사비 검증을 한국부동산원에서 한다는 사실이나 신청 당사자가 조합이라는 점을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양쪽에서 나온다. 감액 권고에 구속력이 없는 상황에서 검증 비용을 대는 조합원 부담만 커진다며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검증 결과에 구속력을 부여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무조건 비용이 발생하게 해 놓고 미이행 시 아무런 조치가 없다니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며 "내가 건설사라도 지킬 이유가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현행법에 적힌 '검증 후 추가 증액 발생 시 공사비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문구를 놓고도 실효성 논란이 있다. 증액 여부를 확인할 사후 관리 절차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증액을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것이다.

김진수 건국대 행정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교수는 "공사비는 시공사들의 주장을 거의 반영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조합과의 협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는 제도"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권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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