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 438억 떼먹은 일당… 가압류 계좌 까보니 '텅장'
500세대 전세사기 의혹 추적 (中)
중개인, 문제없는 집이라며 소개
실상은 계약 만기 전에 강제경매
임차인들은 결국 빈손으로 나와
친구 집 얹혀살며 일상 올스톱
대출이자·소송비에 우울증까지
서울에서 발생한 대규모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청년 임차인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다. 보증금을 되찾으려 소송에 나서는 동안 쌓이는 법적 대응 비용과 대출이자가 이들의 생계와 건강마저 위협하고 있다.
10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동작·관악구 등에서 약 438억원의 보증금이 묶인 빌라 19채는 약 500세대 규모다. 건물 상당수는 부동산 개발·시행업체 A사 대표 이모씨와 그의 가족·사업 관계인 명의로 임대됐다. 여러 피해 건물을 관리한 B사는 임대인을 대신해 계약을 맺거나 재계약 중개업소를 지정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이씨를 중심으로 임대·관리·중개 관계자들이 역할을 나눠 보증금을 편취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7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빌라 정문에는 경매 낙찰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를 바라보던 30대 금모씨는 "올해 1월 이 집을 떠났지만 아직 보증금 8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친구 집에 얹혀살면서도 예전 집의 전세대출 이자를 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금씨는 "안전한 집만 소개한다"는 중개업소를 믿고 2024년 7월 입주했다. 그러나 약 7개월 만에 강제경매가 시작됐고, 그제야 임대인이 이씨의 모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변호사와 등기부를 검토하면서 집주인 재산이 아들 사업의 담보로 제공된 정황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다.
지급명령이 확정되고 임대인의 계좌들을 가압류했지만 잔액은 약 200만원에 그쳤다.
이어 "지금까지 변호사 비용만 약 440만원을 썼고, 국토교통부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재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우울·불안 증세로 정신과 진료도 받고 있다. 자격증 준비나 결혼 등 향후 계획에 차질을 빚다 보니 인생이 후퇴한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사당동의 다른 빌라에 살던 30대 이모씨는 지난해 2월 만기에 보증금 6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하자 법적 대응에 나섰다. 법인등기와 B사의 관리 건물 목록을 살피고 다른 건물의 세입자들에게 연락해 피해 사례를 모았다. 이씨가 살던 집의 임대인은 A사 대표 이씨의 장모로 드러났다.
이씨는 지난해 4월 지급명령 확정 후 임대인 예금·가전제품을 압류하고 빌라의 강제경매를 신청했다. 그는 "형사고소까지 진행하며 법적 대응 비용만 약 2500만원이 들었다"며 "스트레스로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여동생과 지내고 있다. 청년이 자립해 살 수 있는 희망을 짓밟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홀로 상경한 30대 김모씨는 사당동에서 전셋집을 구하며 중개업소에 "집이 작고 불편해도 보증금이 안전한 곳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중개업소는 해당 빌라의 토지·건물가액이 26억원이고 선순위 임차보증금은 9억원, 근저당은 6억원이라며 "보증금 문제는 없다"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전세대출에 신용대출까지 보태 입주한 집은 지난 2월 경매에 넘어갔다.
임차인들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 전세사기피해자법상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의도가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이를 충족하지 못한 한 임차인은 "나라의 혜택도 못 받아 진퇴양난"이라며 "집주인이 빈털터리면 돈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고 한탄했다.
[email protected] 박성현 최은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