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체제 개편, 지역산업 인재로 잇는다… 성산고 IB·해양, 사라고 AI융합
제주교육청, 2027 제주형 자율학교 2곳 지정
성산고 해양·수산·관광 맞춤형 인재 양성
사라고 AI·정보 7개 교과 창의융합 운영
해양 MRO 포럼서 산학연 인재양성 부각
기업 연계 교육과 지역 취업 연결이 과제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 고교체제 개편이 학교 유형을 바꾸는 작업에서 지역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교육 단계부터 키우는 구조로 확장되고 있다. 성산고등학교는 국제 바칼로레아(IB)와 해양 직업교육을 결합하고,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는 2027년 사라고등학교로 전환해 AI·정보 기반 창의융합 교육을 강화한다.
12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에 따르면 도교육청은 성산고와 2027년 사라고로 전환될 제주여상 등 2개교를 2027학년도 제주형 자율학교로 신규 지정했다.
제주형 자율학교는 제주특별법에 따른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활용해 학교와 지역의 특성에 맞는 과목과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다. 도교육청은 교육과정 개발과 운영, 맞춤형 상담, 교원 연수와 운영비 등을 지원한다.
이번 지정에서 주목되는 학교는 성산고다. 도교육청은 성산고를 IB 교육과 해양 직업계열을 함께 운영하는 미래형 고교로 재편한다. 보통과는 IB 기반 교육과정을 적용해 일반계 교육 경쟁력을 높이고, 해양 직업계열은 제주 전략산업과 연결한 전문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춘다.
교육청이 제시한 연계 분야는 해양과 수산, 관광이다. 학생이 학교에서 전공 지식과 실무역량을 익힌 뒤 제주지역 산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만드는 방향이다.
성산고의 변화는 IB 확대라는 교육정책과 직업교육 재구조화가 한 학교 안에서 함께 진행된다는 점에서도 이례적이다.
현재 제주에서 IB 디플로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고교는 표선고에 집중돼 있다. 도교육청은 성산고의 IB 전환을 통해 수요를 분산하고 성산지역을 초·중·고가 이어지는 IB 교육 거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기존 해양교육 기반은 없애지 않고 산업 변화에 맞춰 다시 설계한다. 일반계 전환과 특성화 기능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는 방식보다 두 교육축을 함께 가져가는 구조다.
이 대목은 최근 제주에서 논의가 본격화한 해양산업 재편과도 맞닿아 있다.
제주대학교 글로컬대학사업단과 제주대, 제주도, 교육부, 한국연구재단은 지난 8월28일 '제주형 해양 MRO 생태계 구축 전략 포럼'을 열었다. MRO는 선박과 장비의 유지·보수·정비·운영을 묶는 산업으로, 선박을 새로 만드는 조선업과 달리 운항 이후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정비와 개조 수요를 산업화하는 분야다.
포럼에는 KAIST와 제주대 연구진을 비롯해 한화오션 김대식 상무 등이 참여해 제주형 MRO 산업과 기업의 역할, 산학연 인재양성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제주대가 제시한 제주형 MRO 인재양성 방향은 산업이 필요로 하는 직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한화오션의 주요 인재 모집 분야를 설계·품질·사업관리, 유지·보수·운영, 특수선 연구개발 등으로 나눴다. 연계 전공으로는 조선해양·기계공학, 전기·전자·제어, 컴퓨터공학, 신소재·재료·화학공학, 안전공학과 경영 분야 등이 제시됐다.
선박 MRO가 과거의 기계 정비에 머무르지 않고 전기·전자와 자동화, 빅데이터, 디지털 트윈, AI, 친환경 선박기술을 함께 다루는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교육 모델도 산학일체형 교육과정과 국제 MRO 표준에 부합하는 실습환경, 기업 현장에 기술 해결을 접목한 실무교육, 공동연구 등으로 구체화됐다.
성산고의 해양 직업계열 개편을 곧바로 해양 MRO 전문교육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도교육청은 현재 해양·수산·관광 분야 인재양성이라는 큰 방향을 제시했을 뿐 MRO 학과 신설이나 한화오션과의 교육협약까지 확정한 상황은 아니다.
다만 제주가 해양 MRO를 미래산업 후보로 구체화하고 대학과 기업이 필요한 직무와 교육모델을 논의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성산고의 해양 직업교육 재구조화는 향후 고교·대학·기업을 잇는 인재양성 체계의 출발점이 될 여지가 있다.
실제 산업 생태계를 만들려면 기업 유치나 시설 구축과 함께 지역에서 일할 기술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교육기반이 필요하다. 고교 단계부터 전공을 경험하고 대학과 전문교육, 기업 현장실습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갖춰져야 청년의 지역 취업과 정착까지 연결할 수 있다.
사라고는 다른 방향의 고교 개편 모델이다. 제주여상은 2027년 일반계 고교인 사라고로 전환한다. 기존 AI 중점학교 인프라와 디지털 교육과정을 활용해 인문·사회·자연과학·예술을 연결하는 창의융합학교를 운영한다.
제주특별법 교육과정 특례를 활용한 '주제탐구 프로젝트'를 신설하고 AI·정보 분야 7개 교과를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한다. 그린스마트 첨단 교육환경과 단계별 진로·진학 프로그램도 연계한다.
성산고와 사라고의 개편 방향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학교 교육과 지역의 미래수요를 연결한다는 데 있다.
성산고는 해양산업과 IB를 결합하고 사라고는 AI와 창의융합 역량을 앞세운다. 동일한 교육과정을 학교마다 반복하는 방식보다 지역과 학생의 진로, 산업 변화에 맞춰 학교별 역할을 달리하는 구조다.
제주 고교체제 개편의 성패도 학교 이름이나 유형 변경보다 교육과정이 실제 진학과 취업으로 이어지느냐에서 갈릴 전망이다.
성산고 해양 직업계열의 세부학과와 기업 참여, 현장실습 규모, 취업 연계 방식이 앞으로 얼마나 구체화되는지가 중요하다. 해양 MRO를 포함한 제주 미래산업과 연결하려면 도교육청과 대학, 기업, 제주도의 역할 분담도 필요하다.
한화오션을 비롯한 기업과 도교육청의 직접적인 교육협력은 아직 공식화된 단계가 아니다. 향후 협의가 이뤄질 경우 기업이 요구하는 직무를 교육과정에 어느 수준까지 반영하고 현장실습과 취업까지 어떻게 연결할지가 핵심 확인 대상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고교체제 개편이 학교 현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려면 학교별 특성을 살린 교육과정 운영이 중요하다"며 "성산고와 사라고가 각각의 교육 방향을 구현하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