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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남긴 기억을 그리다…리처드 헌스의 '폼페이' [fn 아트클립]

장인서 기자
파이낸셜뉴스

뉴욕 9·11 테러 25주년 추모전 참여
아일랜드 풍경에서 길어 올린 색과 몸짓
키아프 서울 출품…런던서 개인전 열어

작품 앞에 선 아일랜드 화가 리처드 헌스. 출처=캐도건갤러리 홈페이지
작품 앞에 선 아일랜드 화가 리처드 헌스. 출처=캐도건갤러리 홈페이지

[파이낸셜뉴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남겨진 것들이다. 흔적과 자국, 부재, 기억하려는 인간의 충동과 회복력이다."

이달 초 열린 키아프 서울에서 아트부스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선보인 리처드 헌스는 최근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회화 '폼페이(Pompeii)'에 담은 생각을 이렇게 설명했다. 레바논 태생의 아일랜드 화가인 헌스는 이 작품을 미국 뉴욕시소방박물관에서 열리는 9·11 테러 25주년 추모전 '그라운드 제로 360-리멤브런스'에 출품했다.

■재난의 기억과 풍경의 시간
'폼페이'는 인간이 세운 구조물의 연약함과 장소에 남는 기억에서 출발했다. 고대 도시를 덮친 재난과 9·11을 연결하는 지점도 사건 자체보다 그 뒤에 남은 것들에 있다. 그는 "9·11을 묘사하려는 시도가 아니다"라며 "색과 표면, 몸짓을 통해 부재와 회복력에 다가가려 했다"고 말했다.

비극을 설명하거나 해답을 제시하는 대신 관객이 잠시 멈춰 설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그의 의도다. 헌스는 "회화는 언어를 넘어설 수 있다"며 "때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느껴지는 것에 가장 깊은 감정이 깃든다"고 했다.

그가 풍경을 대하는 방식도 이와 맞닿아 있다. 아일랜드 클레어주의 버런에서 생활하며 작업하는 헌스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석회암과 그 사이에 남은 인간의 흔적을 마주한다. 이를 화면에 그대로 옮기기보다 그곳에서 몸으로 겪은 감각과 자연의 힘이 그림에 스며들도록 한다.

물감을 쌓는 과정에는 덮고 드러내고 지우고 되돌아가는 시간이 함께 들어간다. 그는 "풍경에서처럼 이전에 있던 무언가가 남는다"며 "장소를 재현하기보다 그토록 많은 시간을 품은 곳에서 산다는 의미를 이해하고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질학적 시간과 인간의 삶을 함께 살피는 개인전 'No Ruined Stones'도 오는 10월 3일까지 영국 런던 캐도건갤러리에서 열린다.

키아프 서울에서 선보인 리처드 헌스의 'Held'(2025). 출처=키아프 서울 홈페이지
키아프 서울에서 선보인 리처드 헌스의 'Held'(2025). 출처=키아프 서울 홈페이지

■몸의 움직임과 색으로 빚은 추상
붓질에는 무술 수련의 경험도 배어 있다. 균형과 무게, 호흡과 움직임에 대한 감각이 회화의 신체적 언어로 이어졌다. 아침마다 몸을 움직이고 글을 쓰며 명상한 뒤 작업에 들어가지만, 막상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직관에 몸을 맡긴다.

색 역시 미리 정해놓지 않는다. 같은 석회암도 날씨와 시간에 따라 회색이나 파란색, 보라색에 가깝게 보인다. 비가 온 뒤 강렬해진 초록이 다른 빛 아래서는 풍경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헌스는 개별 색보다 색과 색의 관계에 주목한다. 차분한 색 하나가 다른 색을 갑자기 빛나게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헌스는 한국 관객과의 교감에도 기대를 나타냈다. 동양의 전통에 기반해 작업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함과 움직임, 침묵과 몸짓에서 공통의 직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성공적인 그림은 깊이 느껴지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장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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