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공지능의 명과 암
인류의 문명과 역사는 몇 번의 계기를 통해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불의 발견이 그 첫 번째였다.
불의 발견은 어둠과 추위, 맹수로부터 생명을 지켜 줬고, 활동 가능한 시간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공동체 형성의 계기도 됐다. 또 고기와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됨에 따라 영양흡수율이 높아지고 두뇌가 발달했다.
문자의 발명은 지식을 기록하고 축적함으로써 시공간적 한계를 넘어 지식을 전파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문자를 통해 법과 제도를 구체화, 명문화할 수 있음에 따라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고, 강력한 국가가 형성되는 밑거름이 됐다.
1차 산업혁명의 발단이 된 증기기관의 발명은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다. 인류의 생산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풍요를 제공했다. 수력이나 축력에 의존하던 이전과 달리 도심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운영함에 따라 자본주의 경제체제도 태동할 수 있었다.
더불어 증기기관을 이용한 운송수단으로 이동 가능한 물리적 거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인류의 활동 범위가 대폭 확장됐다. 컴퓨터의 발명과 디지털화는 인류의 정보처리 능력을 극대로 향상시킴에 따라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은 이전의 불, 문자, 증기기관, 컴퓨터 및 디지털화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우리 삶에 다가오고 있다. 이전의 발견과 발명들은 인간 노동과 삶의 보완재적 역할을 함으로써 보다 풍요롭고, 빠르고 편리한 삶과 일상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AI는 인간의 노동력뿐만 아니라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믿고 있는 사고력, 판단력, 창의력이라는 지적 영역에서 보완재의 기능을 초월해 강력한 대체재로 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생산활동이라는 가장 기본적이며 필수적 영역에서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대체할 수 있다. 따라서 '생산·분배·소비'라는 인간의 경제활동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확립해 온 기본적 경제 시스템의 작동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다수 인류의 미래 삶의 불확실성은 그 어떤 변화의 시기보다 더욱더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세계 각국은 AI의 명암을 파악해 긍정적 효과는 극대화하고, 부정적 효과는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기본사회 구현을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마련하고, 제12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올해 8월21일 확정된 '대한민국 AI 윤리원칙'이 한 예다.
물론 AI 윤리원칙이 AI의 부정적 측면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 해법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구성원이 AI 윤리원칙을 능동적, 적극적으로 이행하고자 노력한다면 AI의 부정적 효과는 대폭 감소할 것이며, AI는 인류 역사에서 또 하나의 획기적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사회는 스스로 진화할 수 없다. 역사도 저절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구성원 개개인의 노력과 실천이 뒷받침돼야만 진보와 향상이 가능하다. AI의 긍정적, 선의적 활용과 그 혜택을 구성원 모두의 기본적 삶의 실현을 위해 공유하고자 하는 열린 자세를 통해, 인류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획기적 진보를 AI을 통해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이상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