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의료소송과 필수의료 위기

파이낸셜뉴스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지난 2015년, 생후 5일된 아기가 녹색 구토를 하며 응급실에 실려 왔다. 중장 이상회전과 꼬임으로 즉시 수술하지 않으면 장이 괴사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응급질환이었다. 당시 소아외과 전문의는 휴가 중이었다. 당직 외과 교수가 지체하면 죽을 수 있다고 판단해 메스를 들었다. 수술은 일단 성공했지만 이틀 뒤 장이 다시 꼬였고, 재수술 끝에 소장 대부분을 잘라내야 했다. 아기에게는 발달지연과 사지마비라는 평생의 후유장애가 남았다.

부모는 병원과 의료진을 상대로 15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수술에 결격이 없었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했다면 상태가 더 나빠졌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의료는 결과를 보장하는 '결과 채무'가 아니라 그 순간 최선을 다했는지를 따지는 '수단 채무'라는 법리에 충실한 판결이었다.

그러나 2023년 10월 항소심은 이를 완전히 뒤집었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에게 수술을 맡긴 병원 책임을 물어 약 1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집도의 개인에게도 1000만원의 책임을 지웠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칼을 든 의사에게 법원은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거액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파장은 컸고, 남은 교훈은 하나였다. "내 세부 전공이 아니면 손대지 마라." 실제로 두 살배기 경련 환자가 병원 11곳에서 진료를 거부당해 의식불명에 빠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구급대원이 병원 6곳에 전화를 돌렸지만 모두 거절당했고, 직접 찾아간 병원들조차 소아신경과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시작된 것이다. 의료계는 이 현상의 뿌리를 앞선 판결에서 찾는다. 의사들은 "잘 모르는 분야를 응급 상황에서 수술해 잘못된 결과가 나오면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 자체가 가혹하다"며 "적은 소아외과 의료진이 이런 판결이 쌓일수록 더 보수적으로 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의료는 매 순간 결정을 내려가는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법적 판단은 모든 상황이 끝난 뒤 결과를 놓고 심리하는 '완료형'이다. 이 때문에 사후 편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분야가 의료라는 지적이 나온다. 의사가 나쁜 결과를 피하려고 발버둥 친 그 순간의 절박함은 재판정에서 활자로 정리된 진료기록과 사후 감정서로만 재구성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판결이 만드는 연쇄 효과다. 의사들이 '내 세부 전공이 아닌 환자는 받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학습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음 환자에게 돌아간다. 실제로 다리 절단 외상 환자가 접합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권역외상센터들로부터 잇따라 거절당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응급환자를 우선 수용해 처치한 뒤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넘기는 전원체계 대신 처음부터 책임질 수 없는 환자는 받지 않는 쪽을 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정당한 책임 추궁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설명 부족, 명백한 주의의무 위반은 마땅히 배상과 처벌의 대상이다. 하지만 응급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세부 전공을 벗어나 최선을 다한 행위와 과실로 인한 사고를 같은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법원이 '평균적인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원칙 대신 결과의 참혹함에만 이끌려 판단을 뒤집을 때마다 그 여파는 다음 응급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또 다른 아이에게 돌아간다.

필수의료를 살리자는 구호는 넘쳐나지만 정작 그 필수의료를 지키던 의사들이 법정에서 무너지는 현실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사고의 경우에는 불가항력적 상황의 최선의 조치는 보호하되 명백한 과실은 엄정하게 가리는 정교한 기준이 필요하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100% 완치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의사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줄 때, 우리는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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