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 정상회의...갈등 속 세력 과시·한계도 명확했다 [윤재준의 월드뷰]
개최국 인도, '비(非)서방' 실용 외교 내세워
이란과 UAE 정상 접촉 성과
中 시 주석, 2020년 국경 충돌후 첫 인도 방문
[파이낸셜뉴스] 지난 12~13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이 자리에서 "브릭스 국가들이 더 이상 기존 규칙을 따르는 '규칙 수용자(rule-takers)'가 아닌,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하는 '규칙 제정자(rule-shapers)'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며 블록의 위상 강화를 촉구했다.
이번 회의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셰이크 칼레드 아부다비 왕세자 등 주요국 정상들이 참석했다. 국경 분쟁과 군사적 대립 이력을 가진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 자체만으로도 인도의 외교적 성과이자, 중동 전쟁 등으로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은 브릭스를 미국과 서유럽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거점으로 활용하길 원해왔다. 반면 개최국 인도는 브릭스가 '반(反)서방' 블록으로 비쳐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브릭스가 "특정 국가나 집단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인도 외교관을 지낸 아닐 트리구나야트는 "일부 회원국은 반서방 연대를 원하지만 브릭스의 본질은 그렇지 않다"며 "인도는 전쟁의 시대에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회원국 간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회원국 간 시각차에도 불구하고 첫날 '뉴델리 선언'이 전격 채택됐다. 올해 앞서 열린 두 차례 장관급 회의가 공동성명조차 내지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 진전이지만, 강한 이견이 대립하는 쟁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타협의 산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동 사태는 "최대한의 자제"를 촉구하고 민간 시설 및 평화적 원자력 시설 공격을 비판했으나 가해 국가는 명시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지난 선언들과 달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무역 문제는 "무차별적인 관세 인상"과 단독 제재를 비판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반발을 의식해 미국을 직접 명시하지는 않았다.
국제위기그룹(ICG)의 프라빈 돈티 선임 연구원은 "갈등 상황을 비판하면서도 특정 국가명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인도가 주도한 외교 문법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공식 선언의 미진함과 달리 현장에서는 주목할 만한 외교적 접촉이 이뤄졌다. 이란과 아랍에미리트(UAE) 정상급 회담이며 이란의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UAE의 칼레드 왕세자는 중동 전쟁 이후 양국 간 최고위급 면담을 갖고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시진핑 주석은 2020년 국경 충돌 이후 7년 만에 뉴델리를 방문했다. 모디 총리와 시 주석은 악수를 나누며 무역 장벽 해소와 경제 및 운송 연계 강화를 약속했다. 다만 시 주석이 공식 만찬에 불참하고 체류 시간을 24시간 미만으로 줄이는 등 여전히 냉기류가 흘렀다.
이번 뉴델리 회의는 브릭스가 서방 중심 기관을 벗어나 적대적인 관계의 국가들조차 대화할 수 있는판을 마련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다변화된 국제 질서를 원한다는 공감대 속에서도, 기존 질서를 대체할 구체적인 대안과 실행 방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정상회의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불참하면서 중국의 관심이 줄어들지 않냐는 추측이 나왔다. 당시 회의에서 브릭스는 미국 달러에 도전할 화폐 도입 문제를 놓고 아무런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 여기에는 회원들국간 경쟁 의식으로 인해 새로운 경제 모델을 도입하기를 꺼리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다음 브릭스 정상회의에서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회원국들이 무엇으로 어떻게 대체해야할지가 중대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mail protected] 윤재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