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 에너지 AX의 승부처는 현장
에너지 기업의 인공지능 전환(AX)은 기술보다 현장이 먼저다. 최신 기술을 얼마나 빨리 도입했는지가 아니라 공정과 설비 데이터를 얼마나 제대로 쌓고 연결했는지, 이를 업무에 활용할 사람이 준비돼 있는지가 성패를 가른다.
특히 정유·석유화학 공장은 AI 솔루션을 도입한다고 생산성이 곧바로 올라가는 곳이 아니다. 수십 년간 증설된 설비와 공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원료 투입량과 생산량, 에너지 사용량 등이 서로 영향을 준다. 같은 수치도 설비 상태와 운전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AI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데이터를 정확하게 수집하고 연결하는 일이 우선이다.
임직원의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생산현장에는 오랜 기간 엔지니어들이 쌓아온 운전 경험과 정비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 이 같은 경험은 시스템에 입력된 숫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AX는 솔루션 도입은 물론 데이터와 업무방식, 사람의 역할을 함께 바꾸는 일에 가깝다.
최근 찾은 SK이노베이션 울산 생산기지(CLX)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울산CLX는 약 250만평 부지에 하루 84만배럴의 원유 처리능력을 갖춘 대형 생산기지다.
이곳은 공정 자동제어와 최적화, 예측·진단 모델, 설비·생산관리 시스템 등 AI·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플랜트를 구축해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제조 AX를 위해서는 규모 있는 데이터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에너지 기업의 AI 경쟁력을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어떤 AI를 도입했는지보다 현장 데이터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형태로 축적했는지, 서로 다른 공정과 설비 데이터를 연결할 수 있는지, 엔지니어가 분석 결과를 실제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AI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경쟁사도 도입할 수 있다. 반면 수십 년간 축적된 공정 데이터와 운전 경험, 설비 특성에 대한 이해는 단기간 복제가 어렵다. 이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데이터화하고 업무에 녹여내느냐가 기업 간 격차를 만든다.
결국 에너지 기업의 AX는 기술 도입 경쟁이 아니라 현장 혁신 경쟁이어야 한다. AI 투자와 함께 데이터 체계를 정비하고 현장 경험을 디지털화된 자산으로 바꿔야 한다. AI가 생산성과 안전을 높이는 도구가 되려면 AI가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AI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결국 현장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