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쌓은 제주 자연자원 데이터 문 연다… 지질·생태·기후 연구 연결
암석·GIS·드론 영상 외부 공개
공개·신청·공동연구 3단계 활용
16일 분야별 전문가 활용방안 논의
10년간 자연자원 연구성과 2배 목표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 전역에서 20여년간 축적한 암석과 지질·지형, 동식물, 기후·환경 데이터를 외부 연구자에게 개방한다.
15일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에 따르면 한라산연구부는 오는 16일 제주시 수목원길 생태학습관에서 '자료를 열고, 제주 연구를 넓히다'를 주제로 자연자원 연구자료 공개·활용 워크숍을 연다.
핵심은 오랜 기간 조사하고도 개별 연구와 보고서에 머물던 자료를 다른 연구자가 다시 분석하고 서로 결합할 수 있는 연구 인프라로 전환하는 데 있다.
개방 대상에는 지질·지형과 동·식물, 기후·환경 조사자료를 비롯해 지리정보시스템(GIS), 드론 영상 등이 포함된다.
실제 공개 대상 자료를 보면 범위가 상당히 넓다. 제주 전역에서 수집한 암석시료와 채취 지점, 시추를 통해 확보한 코어 정사영상과 용암층별 암석시료가 있다. 생태 분야에서는 한라산 선작지왓과 윗세오름 일대의 털진달래 개화기 드론 영상과 영실지역 구상나무 군락의 정규식생지수(NDVI) 측정자료 등이 포함됐다.
영실 구상나무 자료에는 6162그루의 위치와 개체별 NDVI 값이 공간정보로 표시돼 있다. NDVI는 식물이 빛을 반사하는 특성을 이용해 식생의 활력과 상태를 수치로 나타내는 지표다. 시기별 자료가 축적되면 구상나무 군락의 변화와 쇠퇴 양상을 개체 단위로 비교할 수 있다.
드론 영상도 활용도가 높다. 항공사진의 기울기와 지형 왜곡을 보정해 지도처럼 위치와 거리, 면적을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든 영상으로 같은 지역을 반복 촬영하면 식생 분포와 개화 범위 등의 변화를 공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자료는 공개 가능성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눈다. 정리가 끝난 자료는 누구나 활용하도록 공개하고 추가 검증이 필요한 자료는 신청을 받아 제공한다. 연구가 진행 중이거나 공개에 제한이 있는 자료는 연구자 간 협의나 공동연구 방식으로 활용 여부를 결정한다.
제주도가 자료 개방에 나선 배경에는 연구기관별로 흩어진 데이터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제주에는 제주대학교와 제주연구원, 세계유산본부를 비롯한 행정·연구기관과 민간 연구조직이 분야별 연구자료를 축적해 왔다. 하지만 기관과 전공 분야가 다르면 같은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도 서로 연결하기 쉽지 않았다.
특정 오름을 예로 들면 지질·지형 자료와 식생, 동물 분포, 기온·강수량, 드론 영상 등이 각각 존재하더라도 따로 관리되면 자연환경 변화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어렵다.
시간과 위치를 기준으로 데이터를 결합하면 연구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화산지질과 토양이 특정 식생 분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기온과 강수 변화가 고산식물의 생존·개화시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처럼 개별 연구에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연구주제를 발굴할 수 있다.
제주도가 제시한 '분산형 연구협력체계'도 이런 구조다. 대규모 연구기관을 새로 만들어 연구자와 장비를 한곳에 모으기보다 기존 대학과 공공·민간 연구기관이 가진 자료와 전문성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물리적으로 흩어진 기관들이 데이터를 매개로 하나의 연구망처럼 움직이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16일 워크숍에는 실제 데이터 구축과 관리, 지질·생태 연구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안웅산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학예연구사는 한라산연구부가 축적한 자연자원 자료의 현황과 공개계획을 설명한다. 안 학예연구사는 제주 화산지질과 한라산 지질도 구축 등을 연구해 온 지질 분야 연구자다.
장동석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총괄과 전문위원은 공공 연구데이터를 개방해 새로운 연구성과로 연결하는 활용사례를 소개한다. 생물다양성 분야에서 축적되는 방대한 공공데이터를 연구자가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주 자연자원 자료와 연결해 살펴볼 예정이다.
현혜림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원은 데이터 표준화와 아카이빙을 다룬다. 현 전문연구원은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아카이브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자료를 공개하는 것만큼 표준화가 중요한 이유도 있다. 기관마다 좌표체계와 조사방식, 파일 형식과 분류기준이 다르면 여러 자료를 동시에 분석하기 어렵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조사했는지를 기록한 메타데이터까지 갖춰야 외부 연구자가 자료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연구결과를 재현할 수 있다.
후속 연구주제도 구체적으로 논의한다. 고기원 제주곶자왈공유화재단 곶자왈연구소장은 제주화산섬의 지질을 통합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10대 연구과제를 제시한다. 고 소장은 제주 지질과 지하수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다.
한아름 국립생태원 연구원은 장기간 축적한 생태·기후자료를 활용한 후속 연구 방향을 발표한다. 한 연구원은 한라산 구상나무 개체군 변화와 기후변화 위험요인 등을 연구해왔다.
워크숍 마지막에는 대학과 연구기관, 자연자원·GIS·데이터 전문가 등이 필요한 자료와 추가 공개 수요, 신규 공동연구 주제를 직접 제안한다.
해외에서도 장기 연구데이터 재활용을 통해 새로운 연구성과를 찾은 사례가 있다. 한라산연구부는 캐나다 레드레이크에서 장기간 축적한 지질자료를 외부 전문가에게 공개한 뒤 기존 분석에서 찾지 못했던 새로운 탐사 가능성이 제시된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
제주 역시 과거 특정 목적으로 수집했던 암석과 식생, 기후자료에 새로운 분석기법을 적용하거나 다른 분야 데이터와 결합하면 처음 조사할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연구주제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개방이 한라산연구부 자료에만 머물 경우 '분산형 연구협력체계'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제주대와 다른 공공 연구기관, 민간 연구조직이 보유한 자료를 어떤 기준으로 연계할지와 공동 플랫폼을 구축할지, 자료의 소유권과 연구성과 귀속을 어떻게 정할지도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개방 대상 데이터의 전체 건수와 용량, 외부 연구자가 실제 자료에 접근하는 방식도 추가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한라산연구부는 이번 워크숍을 출발점으로 자료 공유와 공동연구를 확대해 앞으로 10년 동안 제주 자연자원 분야 연구성과를 현재보다 최소 2배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성과의 기준도 중요하다. 논문이나 연구보고서 수만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자료 이용 건수와 기관 간 공동연구, 신규 연구과제 발굴, 한라산·곶자왈 등 자연자원 보전정책 활용까지 함께 관리해야 데이터 개방의 실질적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김대신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장은 "제주에는 이미 다양한 전문인력과 오랫동안 축적된 연구자료가 있다"며 "이 자료를 열고 서로 연결해 새로운 연구성과로 되돌려 받는 체계를 만들면 대형 연구기관을 새로 만드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