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촌 하이커스, 산에서 가까워진 사람들 [방과 후 법조인들①]
15개 사내 동호회 운영…업무 밖에서 허문 직급·부서의 벽
변호사·직원 함께 산행하며 교류…공익활동으로도 확장
[파이낸셜뉴스] 대형 로펌의 경쟁력은 전문성과 인재만으로 완성될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한 조직에서 일하는 만큼, 이들을 어떻게 연결하고 소통하게 하느냐도 조직 운영의 중요한 과제다.
국내 주요 대형 로펌으로 성장한 법무법인 율촌에서는 그 해답의 한 단면을 사내 동호회에서 엿볼 수 있다. 업무상 접점이 적은 변호사와 직원, 서로 다른 부서의 구성원들이 취미를 매개로 만나면서다.
현재 율촌에서는 공연관람과 독서, 와인, 원데이클래스 등 15개 동호회가 활동 중이다. 동호회 가입 인원은 400명에 달한다. 최소 3개 부문 또는 팀에서 8명 이상이 모이면 관심 분야에 제한 없이 동호회를 만들 수 있다. 회사는 실제 참석 인원을 기준으로 비용의 50%를 지원하지만, 운영 방식은 구성원들의 자율에 맡긴다. 그 중 하나가 지난 2022년 8월 출범한 등산동호회 '율촌 하이커스(Yulchon Hikers)'인데, 현재 7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율촌에는 이전부터 '인자요산'이라는 이름의 산악동호회가 있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등산 등 야외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기존 동호회를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개편해 율촌 하이커스가 탄생했다.
동호회 출범에 참여한 양재선 율촌 외국변호사는 "평소 즐기던 등산을 통해 새로운 직장 동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뜻이 맞는 구성원들과 동호회 개편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산에서는 명함보다 등산화가 먼저다. 변호사와 전문위원, 고문, 직원 등 서로 다른 직군의 구성원들이 같은 길을 걷는다. 평소 수년간 이메일로만 소통했던 사람을 산행에서 처음 직접 만나는 일도 있다.
김수영 율촌 송무지원실 차장은 "산행을 하다 보면 직급이나 부서와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다"며 "힘든 오르막길을 함께 걷고 서로 챙겨주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산에서 만들어진 관계는 다시 일터로 이어진다. 김 차장은 업무상 대면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구성원들도 주말 산행을 함께한 뒤 회사에서 만나면 한층 편하게 인사를 나누게 된다고 전했다. 서로 얼굴을 알고 나면 업무 중 궁금한 점을 묻거나 의견을 나누는 것도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율촌 하이커스는 올해 최소 6회 이상의 정기 산행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서울 근교 산을 중심으로 코스를 선정하지만, 때로는 만만치 않은 산에도 도전한다.
올해 신년 산행으로 찾은 치악산이 대표적이다. 폭설로 비로봉까지 이어지는 수천개의 계단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였고, 왕복 산행에는 7시간 가까이 걸렸다. 머리카락과 가지고 간 물이 얼 정도의 추위 속에서도 참가자 전원이 서로를 응원하며 산행을 마쳤다.
양 외국변호사는 북한산 우이령길처럼 서울 근교에 잘 알려지지 않은 걷기 장소를 발견하는 것도 동호회 활동의 재미라고 소개했다. 흥미로운 점은 율촌이 동호회 활동을 단순히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 외국변호사는 "조직문화나 소속감 고취라는 가치를 앞세우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나의 복리와 건강을 위해 혼자 꾸준히 실행하기 힘든 운동을 기왕이면 함께하는 즐거운 모임이라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성원의 자발적인 취미 활동은 사회공헌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율촌 하이커스는 율촌·공익법인 온율의 토요정기산행과 연계해 자폐성 장애인 활동보조 봉사활동에 참여 중이다. 사내 러닝 동호회 역시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마라톤에 참가하는 등 동호회 활동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율촌 하이커스는 오는 11월 충청도 소백산 등반에도 나선다. 양 외국변호사는 "계절과 구성원들의 선호를 반영한 다양한 난이도의 코스를 발굴해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교류할 수 있는 동호회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업무로 맺어진 사람들이 취미로 다시 만나고, 산에서 가까워진 관계가 일터의 소통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율촌의 사내 동호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대형 로펌에서 서로 다른 직군과 세대를 잇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email protected] 유선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