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경제

美 연료 위기 현실로, 경유 6달러 시대 탈출 어려워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美 경유 가격 또다시 사상 최고치 경신
그동안 유가 잡던 비상 대책 고갈, 사우디 송유관 피습이 방아쇠
美 셰브론 CEO "여유분 거의 고갈"
중동 및 우크라 분쟁으로 정유 시설 파손, 원유보다 정제유 부족 심각
트럼프 "우크라 및 러시아, 에너지 시설 타격 않기로"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밀밸리의 한 주유소에 갤런(3.78L)당 경유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AP연합뉴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밀밸리의 한 주유소에 갤런(3.78L)당 경유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A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이란과 전쟁 이후 가파른 유가 상승을 겪고 있는 미국에서 업계를 중심으로 연료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에너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그동안 겨우 유가를 억제하던 임시방편들이 바닥났다고 경고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0일 사우디아라비아 송유관 피격으로 연료 위기가 현실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미국자동차협회(AAA)가 집계한 미국 내 경유 소비자 가격은 갤런(3.78L)당 평균 6.23달러(약 8468원)로 사상 최고치였다. 경유 가격은 사우디의 송유관이 이라크 내 친(親)이란 민병대의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가동을 멈춘 다음날인 11일에 사상 최초로 갤런당 6달러를 돌파했으며, 하루만에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현재 해당 가격은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지난 2월 28일 이후 약 68% 상승했다.

외신들은 사우디 시설 피격으로 세계 원유 시장에 공급되는 물량의 약 4%가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4일 미국 시장에서 거래된 10월 인도분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보다 1.34% 오른 배럴당 101.3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11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1.02% 상승한 배럴당 105.68달러에 마감했다.

앞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이란전쟁 개전 이후 전략 비축유를 방출하는 등 정책적으로 유가를 억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 석유기업 셰브론의 마이크 워스 CEO는 11일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린 에너지 행사에서 "이러한 수단들은 공급 위험과 가격 상승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은 효과를 다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사태 초기 에너지 공급 체계에서 가지고 있던 여유분은 거의 고갈됐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전략 비축유 재고는 지난달 21일 기준 2억9000만배럴로 1982년 말 이후 가장 적었다. 이는 저장 가능 용량(7억1400만배럴)의 절반 수준이다.

WSJ는 지난 3월 보도에서 셰브론과 엑손모빌, 코노코필립스를 포함한 미국 3대 에너지 기업 CEO들이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장관, 더그 버검 내무장관 등 미국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에게 경유 등 정제유 부족을 경고했다고 전했다. WSJ는 셰브론의 워스가 에너지부 라이트와 자주 접촉해 석유 문제를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워스는 11일 발표에서 자신이 지난달 3일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당시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셰브론 등 미국 에너지 기업들을 비난한 뒤 "당장 소비자 가격을 낮춰라!"라고 적었다.

에너지 기업들은 가격을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재고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사우디의 경우 송유관 파손에도 불구하고 홍해를 통한 원유 수출을 이어가고 있지만, 홍해 수출용 원유 재고가 5~7일치에 불과하다.

스위스의 에너지·원자재 트레이딩 기업인 비톨의 러셀 하디 CEO는 지난 8일 싱가포르 컨퍼런스에서 원유보다 경유 등 정제유 부족이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란전쟁 및 2022년 이후 지속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정유소들이 대거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하디는 중동과 러시아에서 각각 일평균 200만배럴씩 석유제품 수출 물량이 감소했다며, 석유제품 시장이 원유 시장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재고가 여전히 줄어들고 있다"며 "재고 감소를 막을 만큼 충분한 정제 능력이 아직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있는 잉여 물량도 계속 소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세계 경유 가격 상승은 이란이 아니라 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양측이 에너지 관련 목표를 타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트럼프는 지난달 30일 게시글에서 "내가 베네수엘라 석유로 할 일 중 하나는 국가 전략 비축량을 채우는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 석유기업 셰브론의 마이크 워스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5월 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이버리힐스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석유기업 셰브론의 마이크 워스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5월 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이버리힐스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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