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꺼낸 시월의 기억…세대를 건너온 상처를 읽다 [새책]
이경아 연작소설집 '당신의 시월' 출간
건대항쟁·여순사건·제주4·3의 기억 조명
배우 김혜나·감독 전선영과의 대담 수록
국가폭력의 상처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개인과 가족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이경아의 연작소설집 '당신의 시월'(달아실)은 건대항쟁과 여순사건, 제주4·3의 기억을 서로 다른 세대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15일 출간된 이 책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그녀의 영화', '당신들의 푸가', '흙냄새', '이젠 올 수 있는 사월' 등 다섯 편이 담겼다. 한국농민문학상 수상작 '붉은 달이 매달린' 이후 선보이는 신작들이다.
표제작은 1986년 건대항쟁을 겪은 여성 화자가 40년 만에 자신의 기억을 꺼내는 과정을 그린다. 산속 레지던시에서 만난 젊은 작가 지망생들 앞에서 과거를 더듬는다. 최루탄과 물탱크, 국화 향기 등 감각적 이미지에 당시의 공포와 사랑이 함께 담긴다.
화자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곧바로 이야기로 옮기지 못한다. 기억은 몸에 남은 감각과 더듬거리는 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를 증언하는 일의 어려움 자체가 인물의 상처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녀의 영화'와 '당신들의 푸가'는 모녀 삼대와 두 커플의 도주극을 통해 상처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양상과 그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을 살핀다. 비비안·수정·루리로 이어지는 여성 인물들의 관계에는 영화계의 성적 착취와 미투 이후의 권력 문제도 겹쳐진다.
인물의 이름과 배경은 달라져도 버려짐과 감금, 상실의 경험은 반복된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한 사람의 고통이 다른 사람의 삶과 연결되는 지점을 드러낸다.
'흙냄새'는 도시를 떠나 강원도 북단에 정착한 소설가의 독백을 통해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여순사건 트라우마를 들여다본다. '이젠 올 수 있는 사월'은 제주4·3 답사기 형식으로 섬의 역사와 화자의 실패한 결혼사를 함께 다룬다.
다섯 편은 개인이 겪은 상실과 가족의 침묵을 한국 현대사의 사건들과 연결한다. 상처가 남아 있는 일상을 따라가며 과거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문제를 묻는다.
말미에는 배우 김혜나, 영화감독 전선영과 나눈 대담 '바닷가에서 천천히'를 실었다. 연기와 연출이라는 다른 매체의 시선으로 소설 속 인물들을 돌아보는 자리다.
김석 건국대 철학과 교수는 추천사에서 "기억이란 내가 찾을 때 기억이며, 외면할 때는 생채기로 남는 그런 것이다"라고 썼다.
이 작가는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했으며, 단국대에서 문예창작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농민문학' 소설 신인상을 받았고, 독립영화와 뮤지컬 '완승', 연극 '별들의 무덤' 등을 연출하며 소설과 영상·공연 분야를 오가고 있다.
[email protected] 장인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