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인간쓰레기', '어린놈의 XX'...모욕죄가 안되는 이유

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대법 "기분 나쁜지 아니라 사회적 평가 떨어졌는지 중요"
"법률 한 건당 처벌조항 10개" 과잉범죄화 지적도

대법원 전경. 사진=김동규 기자
대법원 전경. 사진=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대법원이 잇따라 모욕죄의 처벌 문턱을 높이고 있다. 일시적인 감정 표출에 그치는 거친 표현은 형사처벌이 아니라 민사책임으로 규율할 영역에 가깝다는 것이다. 형벌을 최후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을 모욕죄 판단에 끌어들인 셈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병실에서 말다툼을 하다 "인간쓰레기네"라고 말한 유튜버 A씨의 모욕 혐의를 유죄로 본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 발언이 피해자의 행동에 대응해 불만이나 분노감정을 거칠게 나타내면서 한 단발적이거나 즉흥적·충동적 발언에 해당한다고 봤다. 피해자의 주관적 감정을 상하게 하는 등 명예감정을 침해할 만한 표현으로 보일 뿐,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 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판단 기준은 '기분'에서 '사회적 평가'로

이 기준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대법원은 2022년 8월 31일 판결에서 이 법리를 밝혔고, 지난 5월 8일 판결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했다. 부천의 한 아파트 생활문화센터 회의실에서 입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야, 야, 친구냐?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건방지게"라고 말한 아파트 선거관리위원이 모욕 혐의로 기소된 건에서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원심의 유죄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이 전제로 삼은 것은 형법 제311조 모욕죄가 보호하는 법익이 '외부적 명예', 즉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라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욕'은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판단 기준도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상대방 개인의 주관적 감정이나 정서상 어떠한 표현을 듣고 기분이 나쁜지 등 명예감정을 침해할 만한 표현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관계와 해당 표현에 이르게 된 경위, 표현방법, 당시 상황 등 객관적인 제반 사정에 비추어 상대방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인지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모욕감을 느꼈는지가 아니라, 그 표현으로 사회적 평가가 실제로 떨어졌는지를 본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분리된 개별 언사만 놓고 보지 말고 표현의 전체적인 내용과 맥락을 고려하라고 했다. 우발성 여부와 과장 여부, 대화나 토론의 장이 열리게 된 경위와 성격, 행위자와 상대방의 관계를 함께 따지라는 취지다.

문제는 '사회적 평가가 실제로 떨어졌는지'의 기준이 여전히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모욕죄로 몇명이 형사절차에 들어서는지는 따로 집계되지 않는다. 다만 대검찰청 범죄분석에 따르면 '명예'로 묶여 검거된 범법자는 2022년 3만5451명, 2023년 3만1201명, 2024년 3만637명이다.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1년에 3만명대다.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수사를 시작할 수 있는 친고죄다. 상대방이 모욕감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도 고소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법원이 판단 기준을 주관에서 객관으로 옮겼지만, 그 앞단계인 고소와 입건 단계에는 같은 잣대가 곧바로 적용되지 않는다.

형법의 과잉 지적도

모욕이란 행위 즉 인격권과 명예, 감정을 침해하는 행위가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는 있어도 곧바로 형사책임이 따르는 표현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일시적인 감정 표출에 해당하는 표현이 사회 내의 자체 평가와 통제 기능에 맡기거나 민사책임으로 규율할 부분이지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과잉범죄화'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과잉범죄화는 국가가 범죄로 규정하는 행위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 형벌을 최후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이 흔들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실제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한국의 형사사법체계 전반을 두고 이같은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윤지영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4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제출한 '형사처벌 규정 정비를 위한 기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현행 법률 1686개 가운데 1069개, 약 63.4%에 형사처벌 규정이 들어 있다. 조항수로는 1만1165개로 법률 1건당 평균 10개꼴이다. 보고서는 "형사처벌 조항이 체계적 조정 없이 장기간 누적·확대되는 구조를 형성하면서 형사처벌은 본래의 최후수단적 성격을 넘어 광범위한 규제 수단으로 기능하게 되었다"고 짚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든 논리도 같은 선상에 있다. 재판부는 "일시적인 감정의 표출에 해당하는 표현은 그것이 성별, 인종, 민족, 장애, 출생 지역, 성적 지향 등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에 기반한 공격적·적대적·경멸적 감정의 표현에 해당하지 않는 한, 대중의 언어생활이란 측면에서 사회 내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른 자체 평가 및 통제기능에 맡기거나 민사적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규율할 수 있는 영역이 적지 않으므로, 모욕죄의 잣대를 들이대어 최후적·보충적 규제수단인 국가형벌권 행사를 통해 개입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email protected]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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