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로봇 전태일까지 상상.. 미술 작가들이 본 노동의 미래

최수상 기자
파이낸셜뉴스

노동미술 2026 ' 노동의 미래 아포칼립스'
울산 북구 '울산노동역사관 1987' 9월 18일~11월 14일

박경효 작가 '분신 시뮬레이션' 1970년 근로기준법을 외쳤던 전태일 열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울산노동역사관 1987 제공
박경효 작가 '분신 시뮬레이션' 1970년 근로기준법을 외쳤던 전태일 열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울산노동역사관 1987 제공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AI의 도입과 산업용 휴머노이드의 생산라인 투입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걱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인간을 대체할 수단으로서, 앞으로 노동의 개념도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작가들은 앞으로 펼쳐질 노동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울산 북구 '울산노동역사관 1987'에서 오는 18일부터 열리는 '노동의 미래, 아포칼립스'에서 작가들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17일 울산노동역사관 1987에 따르면 아포칼립스(ἀποκάλυψις)는 고대 그리스어가 어원으로 원래 '덮개를 열다' 또는 '베일을 벗기다'란 뜻을 갖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앞으로 다가올 노동 현실을 예술인의 시선으로 상상하며 미리 열어보고자하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송주웅 '청맹과니의 노래'는 2025년 11월 6일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돼 노동자 7명이 사망한 사고를 소재로 삼았다. 울산노동역사관 1987 제공
송주웅 '청맹과니의 노래'는 2025년 11월 6일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돼 노동자 7명이 사망한 사고를 소재로 삼았다. 울산노동역사관 1987 제공

최근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우리 삶과 직접 연결되고 있다. 노동 현장도 다르지 않다. AI의 등장으로 사라질 직업군을 예측하던 것이 어느새 현실이 됐다. 휴머노이드 역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반복 작업을 위한 로봇 팔 수준을 뛰어넘어, 더 힘든 노동을 쉼없이 24시간 할 수 있다는 홍보와 함께 등장하고 있다. 이미 다수의 업체에서 최종 테스트 단계를 밟고 있고, 현장 투입이 시작되는 추세다.

그동안 국내 노동계는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플랫폼노동, 그림자 노동 등 수많은 불안정·불완전 노동을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이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두고 사회적 대립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제 거기에 더해 기술의 진보마저 노동의 종말과 고용 불안과 실업의 촉매제가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전시 '노동의 미래, 아포칼립스'는 그 흐름을 좇아간다.

이번 전시는 기획전시 '노동미술 2026'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으며 한국 작가 20명이 참여했다. 김규표, 김미련, 김재석, 박경열, 박경효, 박성완, 박영균, 박은태, 박철우, 배성희, 서수경, 성효숙, 송주웅, 신미란, 유지수, 윤은숙, 이선일, 정봉진, 정성진, 최희범 등이다. 울산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노동과 인권, 진보의 색채를 가진 작가들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먼저 부산에서 활동하는 박경효 작가의 '분신 시뮬레이션'을 들 수 있다. 현대자동차의 아틀라스를 떠올리게 하는 한 휴머노이드가 1970년 근로기준법을 외쳤던 전태일의 형상으로 등장한다. 24시간 노동을 무한으로 반복할 로봇이기에 무척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박영균 작가(경기 김포)의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원합니다'는 AI에게 의뢰한 노동 현장의 상상과 작가가 직접 그린 채색화를 대비시킨 작업이다. 성효숙 작가는 더 나아가 미지의 행성으로 이주하는 지구인의 모습을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냈다.

박영균 작가의 '현대자동차 점심시간'.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엇갈린 운명이 엿보인다. 울산노동역사관 1987 제공
박영균 작가의 '현대자동차 점심시간'.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엇갈린 운명이 엿보인다. 울산노동역사관 1987 제공
성효숙 '우리는 프록시마 b로 간다' 울산노동역사관 1987 제공
성효숙 '우리는 프록시마 b로 간다' 울산노동역사관 1987 제공

반대로 신미란 작가는 AI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깊이를 말한다. 차가운 기계 선반 위로 피어난 꽃을 함께 포착한 '기계와 생명'에는 작가가 전하고픈 담백한 언어가 있다. 그리고 이선일 작가의 '끝이 있긴 있을까' 역시 막연한 불안 대신 함께 붙잡고 다독이는 따뜻한 시선을 품고 있다.

미래와 현실이 교차할 때 노동의 일상을 꼼꼼하게 포착한 작품들도 눈에 띈다.

플랫폼에 끼인 배달노동자의 휴식을 그린 배성희 작가의 '마지막 별밤'과 박성완 작가의 '배달원의 쉼'은 작은 화폭이지만 잔잔한 울림을 준다. 최희범 감독의 미디어 작품 '근력연대운동'과 김미련 작가의 '우리는 일하고 싶다'는 공동작업으로 완성된 것으로 각각 세종호텔 고공농성과 구미 옵티컬하이테크 옥상농성에 직접 연대하면서 만든 결과를 선보였다. 그리고 송주웅 작가의 '청맹과니의 노래'는 2025년 11월에 발생한 울산화력발전소 붕괴 사고를 다뤘다. 이 사고로 타워 해제작업 중이었던 노동자 7명이 숨졌다.

울산노동역사관 1987 배문석 사무국장은 "예술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미리 상상하는 무한한 마력이 있고 딱딱하고 팍팍한 현실을 직관하고 은유하는 힘도 있다"라며 "이번 전시는 미술로 미지의 베일을 벗겨낸 작품으로 채워져 있으며, 막연한 불안보다 직접 마주할 시간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아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는 11월 14일까지 이어진다.

[email protected]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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