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 속 벌어진 체감경기… 고금리 버틸 체력도 '바닥'
일부 업종·계층 '성장 쏠림' 심화
3%대 성장률 내수 파급력 제한적
중립금리까지 끌어올릴 가능성
소외층엔 물가·이자 이중고 불가피
5대 금융지주 산하 연구소들은 올해 우리 경제가 반도체 수출과 설비투자 호조에 힘입어 3%대 성장률을 무난히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내년에도 양호한 성장세와 물가 부담이 이어져 고금리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봤다. 성장의 온기가 내수 전반에 고르게 퍼지지 않으면서 금리 인상을 감당할 여력에는 차이가 나타날 전망이다.
■반도체 호황, 체감경기는 '온도차'
17일 파이낸셜뉴스가 5대 금융지주 산하 연구소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3.3~3.5%로 나타났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제시한 3.3%와 같거나 소폭 높은 수준이다. 내년 성장률은 대체로 2% 중반대로 예상했다.
지난해 1.1%에 그쳤던 성장률이 올해 3%대로 높아질 것으로 보는 배경에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수출 확대가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8월 누계 수출은 6935억88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2.9% 증가했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넘는다. 같은 기간 전체 수출 증가액의 73.7%가 반도체에서 발생했다.
연구소들은 인공지능(AI) 확산과 관련 투자 증가가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 능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을 높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연구소 한 관계자는 "잠재성장률 상승으로 경기를 과열시키거나 위축시키지 않는 중립금리 수준까지 높아지면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 여력이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성장의 혜택이 퍼지는 범위와 속도다. 연구소들은 반도체 호황이 소득 개선과 재정여력 확대를 통해 내수 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보면서도 산업 특성상 파급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는 대규모 설비가 필요한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수출·투자 증가에 비해 고용 유발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반도체 등 현재 성장을 이끄는 산업은 자본집약적이고 중간재 수입 의존도가 높아 내수 파급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며 "성장과 소득 개선은 일부 업종·계층에 집중될 수 있지만 금리 인상은 경제 전반에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전체 성장률이 높아져도 소득이나 매출이 충분히 늘지 않은 가계와 내수기업은 이자비용 증가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고소득이면서 부채가 없는 가구에는 금리 상승의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빚을 많이 내 주택을 구입한 가구와 영세 자영업자는 상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물가에 이자까지 이중 부담
중동전쟁에 따른 유가 불안은 성장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됐다.
연구소들이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은 2.7~2.8%다. 지난해 2.1%보다 높고 한은의 물가안정목표인 2%도 웃돈다.
물가 불안이 내수 과열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전쟁으로 국제유가와 수입물가가 오르면 소비와 매출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도 생활비와 생산비용은 늘어난다. 여기에 물가 안정을 위한 금리 인상이 겹치면 가계와 기업은 비용 상승을 이중으로 감당해야 한다.
더구나 중동지역 긴장이 격화해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하는 등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물가 둔화가 늦어지고 고금리가 길어질 위험도 있다.
가계에서는 대출금리 재산정이 부담을 키울 수 있다. 변동금리 차주뿐 아니라 과거 연 2~3%대 금리로 대출받은 5년 혼합형 주담대 차주도 고정금리 적용기간이 끝나면 높아진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소득이 충분히 늘지 않은 상태에서 원리금 상환액이 증가하면 소비와 저축에 쓸 수 있는 돈은 줄어든다.
이 같은 소비 여력 축소는 내수 업종의 매출 회복에도 부담이다. 가계의 이자 부담과 자영업자의 매출 부진이 맞물리면 체감경기 개선은 더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설문에 참여한 한 연구소 관계자는 "원리금 상환 부담이 소비를 제약하는 임계점을 넘은 가구 비중이 증가해 가계소비 둔화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다만, 영향 정도는 차주별 여건에 따라 차별화될 것"이라고 했다.
[email protected] 예병정 이현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