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기고] 그 여름의 폭염이 북극에서 시작됐다면

파이낸셜뉴스

글_이병민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뉴시스] 사진은 본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 = 유토이미지. 뉴시스
[뉴시스] 사진은 본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 = 유토이미지.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지난여름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열대야는 밤마다 이어졌고, 낮의 폭염은 온열질환자와 전력수요 기록을 연일 갈아치웠다. 우리는 그 더위를 '올여름의 일'로 넘기기 쉽지만, 기후과학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한반도의 이상고온과 지구 반대편 북극의 변화는 하나의 대기 순환으로 연결돼 있다. 북극이 지구 평균의 약 네 배 속도로 뜨거워지면서 제트기류가 느슨해지고, 그 느슨해진 흐름이 중위도에 열돔과 폭염, 집중호우를 더 자주 붙잡아 둔다. 지난여름 우리가 겪은 고통의 일부는, 저 멀리 녹고 있는 북극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북극, '우리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창'

그래서 북극은 '먼 곳의 풍경'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창'이다. 흔히 북극은 숫자로 이야기된다. 해빙 면적은 1979년 이후 절반 넘게 줄었고, 두꺼운 다년생 해빙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 숫자들은 새로운 항로와 자원, 물류라는 '기회의 언어'로 빠르게 번역돼 왔다. 그러나 정작 그 얼음 위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은 우리의 셈법에서 자주 빠져 있다. 앞으로의 대응을 준비하려면, 바로 그 사람들의 자리에서 변화를 읽어야 한다.

폭염과 가뭄으로 메마른 프랑스 서부 부앵 지방 농토. 사진=연합뉴스
폭염과 가뭄으로 메마른 프랑스 서부 부앵 지방 농토. 사진=연합뉴스

북극의 변화는 바닷길이 열리고 자원이 드러나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집과 도로, 항만 같은 기반시설이 흔들리고, 해안침식과 홍수는 마을의 위치 자체를 바꾼다. 알래스카의 유픽(Yup'ik) 마을 뉴톡은 강기슭 침식과 동토 융해를 견디지 못해 주민들이 9마일 떨어진 머타빅으로 마을을 통째로 옮겼다. 기후변화로 인한 미국 내 첫 전면 이주 사례다.

그린란드에서는 해빙 시기가 빨라지며 전통적인 개썰매·어로의 달력이 흔들리고, 스웨덴 북부 사미(Sápmi)의 순록 유목민은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는 눈 탓에 순록이 먹이를 찾지 못하는 새로운 위험에 직면했다. 북극의 기후 문제는 통계가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인 삶의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국제 학계의 시선이 이미 '회복탄력성'이 핵심어로 부상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논의는 여전히 항로·자원·지정학에 쏠려 있다. 이 '인식의 격차'는 단순한 학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경제적 비용으로 되돌아오는 전략적 공백이다.

흥미롭게도 기후위험이 커진다고 해서 원주민의 이주가 자동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북미 북극권 연구를 종합하면, 개인과 가구 차원에서 기후변화가 곧바로 이주를 유발한다는 증거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일자리와 교육, 의료, 주거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이 이동을 좌우했고, 가족과 문화,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은 사람들을 고향에 머물게 하는 힘으로 작동했다. 북극 원주민을 혹은 '전통의 수호자'라는 단순한 상(像)으로 가두어서는, 그곳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구와 환경을 함께 읽는 '융합의 시선' 필요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인구와 환경을 함께 읽는 융합의 시선이다. 대기·동토·연안의 변화를 장기 관측하는 자연과학 데이터가 변화의 부담이자 기회가 되는지를 설명한다. 지리정보 분석, 심층 인터뷰, 전통지식에 대한 해석이 관측 데이터와 결합할 때, 비로소 북극은 '관리 가능한 위험'과 '예측 가능한 기회'의 공간이 된다.

인천 학생들이 방문한 북극 빙하. 연합뉴스
인천 학생들이 방문한 북극 빙하. 연합뉴스

이 융합은 학문적 이상이 아니라 경제적 합리성의 문제다. 북극권의 항만·에너지·관광·물류 투자에는 수십 년 단위의 불확실성이 따른다. 동토 융해와 해안침식은 시설의 안전과 유지비용을 직접 끌어올리고, 삶의 터전을 잃은 지역사회의 불안정성은 어떤 사업 계획에도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로 작용한다. 전 세계 자본의 판단 기준이 된 ESG의 관점에서도 방향은 분명하다. 환경을 훼손하고 원주민의 권리를 무시하는 프로젝트에서 글로벌 자본이 발을 빼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됐고, 반대로 지역사회의 지식을 존중하며 함께 적응 모델을 만드는 일은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된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계 10위권 경제와 높아진 문화적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 기여는, 이제 우리 사회가 마주한 시대적 과제다. 북극은 그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쌓아온 관측 기술과 데이터 역량을 현지에 일방적으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원주민 지역사회의 지식·경험과 결합해 함께 해법을 만들 때, 한국은 '책임 있는 북극 파트너'라는 국격에 맞는 위상을 얻는다. 그것은 명분인 동시에, 지속가능한 북극 진출을 위한 가장 확실한 신뢰 자산이기도 하다.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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