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가 펄떡, 간돌검이 성큼"…박물관 찢어놓은 'K-유물' 런웨이
[파이낸셜뉴스] 유리 진열장 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던 우리 문화유산들이 시민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입고 박물관 밖 런웨이로 걸어 나왔다.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2026 국중박 분장놀이 전국편' 결선 대회가 3000여 명의 관람객이 운집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국중박 분장놀이'는 국민들이 직접 우리 문화유산을 분장과 퍼포먼스로 재해석해 선보이는 대국민 참여형 축제다.
올해 처음 전국 단위 행사로 판을 키운 이번 대회에는 지난해보다 3배 이상 많은 총 275팀(643명)이 지원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9월 초부터 전국 4개 권역(춘천·공주·대구·전주)에서 치열한 본선을 거쳐 올라온 최종 25팀이 이날 다채로운 개성과 메시지를 담은 결선 무대를 꾸몄다.
영예의 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과 상금 300만 원은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기증품인 '백자 잉어모양 연적(백자 청화 연적)'을 재현한 전은슬씨(22)에게 돌아갔다. 황금빛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른 전 씨는 벼루에 물을 따르는 문방구인 연적의 쓰임새와 잉어가 힘차게 뛰어오르는 생동감을 바닥에 누워 펄떡거리는 퍼포먼스로 완벽하게 표현해 심사위원과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대학 졸업을 앞둔 취업준비생이라고 밝힌 전씨는 무대 위에서 "이번 수상으로 큰 용기를 얻었다"며 벅찬 소감을 전했다.
최우수상(관장상)은 직접 발을 움직여 셀프 회전을 선보인 '반가사유상'(웹툰 작가 이대양), 세련된 퍼포먼스를 뽐낸 또 다른 '반가사유상'(박도현),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청동 방울' 등 5팀이 차지했다.
이 밖에도 유명인들의 재치 있는 참여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인간 간돌검'으로 변신해 입선한 모델 이혜정의 활약이 돋보였다. 배우 이희준의 아내이자 농구선수 출신인 이 씨는 양팔을 위로 쭉 뻗고 옆으로 걷는 독특한 워킹을 선보인 뒤 무대 위에서 "아들, 엄마 잘하고 있어"라고 외쳐 객석의 폭소를 자아냈다. 또한 아픈 역사를 딛고 귀환한 대한제국 국새 '제고지보'를 통해 미환수 유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팀, 단원 김홍도의 '서당' 풍속도를 훈훈하게 재현한 경기 광주시 장애인거주시설 동산원 참가자들까지 각양각색의 유물들이 무대를 수놓았다.
행사를 향한 대중의 관심도 뜨거웠다. 박물관 측이 마련한 2000석 규모의 사전 관람 신청은 조기 마감됐으며 당일 박물관을 찾았다가 발길을 멈춘 시민들까지 더해져 현장 열기를 더했다. 부스존에서는 분장과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안동탈놀이단과 가수 안예은의 축하 공연이 축제의 흥을 돋웠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전시장 안에 갇힌 유물이 현재에 살아나온 것"이라며 행사의 의미를 짚었다. 유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관람객 수 세계 3위에 오른 것은 유물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즐길 계기를 만든 성과"라며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페스티벌인 만큼 내년에는 더 성대하게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 역시 "한국에서 시작한 이 분장놀이가 앞으로 전 세계적인 축제로 뻗어나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극찬했다.
[email protected] 박지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