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전쟁' 앤스로픽, 상장 뒤 성장 신화 무너지나
[파이낸셜뉴스]
사상 최대 기업공개(IPO)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공지능(AI) 모델 클로드 업체 앤스로픽에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다. AI 모델 간에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어 지금의 성장 신화를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IPO로 대박을 터뜨린 뒤 주가가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현지시간) 투자자들이 IPO 뒤에도 앤스로픽의 이례적인 성장이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 당장은 분위기가 좋다.
연환산 매출은 지난 7월 650억달러(약 90조원)로 늘었고, 낙관론자들은 연말이면 두 배 가까이 급증해 1200억달러를 웃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역대 그 어떤 기업도 도달하지 못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할 것이란 예상이다.
그러나 상당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이런 성장 신화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투자자들에 따르면 현재 앤스로픽 기업가치는 9650억달러(약 1340조원)로 평가된다. 상장 뒤에는 더 뛸 것이 확실시된다. 적게는 1조5000억달러에서 많게는 4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존과 같은 규모의 시가총액을 기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에 대한 회의론도 높아지고 있다. 가장 큰 배경은 최대 경쟁사인 오픈AI의 선전이다.
오픈AI는 지난 7월 새 AI 모델 GPT 5.6을 공개한 뒤 내줬던 시장을 회복하고 있다. 오픈라우터에 따르면 오픈AI의 새 모델이 공개된 뒤 앤스로픽은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주간 고객 지출이 오픈AI에 뒤처졌다.
경쟁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픈AI와 앤스로픽 모두 '오픈' 모델들의 위협을 받고 있다. 오픈 모델은 변수들이 공개돼 맞춤화가 가능한 AI 모델이다.
이 오픈 모델들은 딥시크, 문샷 같은 중국 업체들, 또 메타플랫폼스가 주도하는 모델로 앤스로픽이나 오픈AI에 비해 저렴하다. 게다가 성능은 빠르게 개선돼 지금은 오픈AI와 앤스로픽의 '프런티어' 모델들과 견줄 정도가 됐다. 덕분에 시장 점유율도 높아지고 있다.
기업 결제 시스템 업체 램프 공동 창업자 에릭 글라이먼은 "AI 업체들 간 진정한 가격 경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램프를 비롯한 AI 고객사들은 임무에 따라 AI 모델을 돌려가며 사용한다. 단순한 업무에 고가의 앤스로픽이나 오픈AI 모델을 활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램프는 AI 모델 교차 사용 덕에 관련 지출을 40% 절감했다.
글라이먼은 "식료품을 사러 가는 데 페라리를 빌릴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사티야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업계 관계자들이 그동안 주장했던 일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AI 모델이 결국 '범용화(commoditised)' 하면서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지고, 이용자들은 가성비가 가장 높은 모델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전설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파트너 출신인 마이크 폴러스는 "AI가 잘 작동하고, 사업 모델이 정착한다면 그 중심에는 앤스로픽이 자리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경쟁은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앤스로픽 외에도 오픈AI, 또 수많은 오픈 모델 AI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라며 "AI 시장은 아늑한 독점 시장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소프트웨어 업계가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AI 역시 초반에는 경쟁 무풍지대에서 높은 마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약화하고 있다. 상장도 되기 전에 '허니문' 기간도 없이 비관론이 거세지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이미 가격 전쟁이 시작된 터라 독점적 마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앤스로픽 등 AI 업체들이 대형 고객사, 클라우드 협력사는 물론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휘둘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류 절멸 위기론도 AI 업계의 수익성 향상에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다. 앤스로픽 연구원 제이콥 콕슨은 지난 8일 회사에 사표를 내면서 "AI 개발자들은 AI가 2030년 안에 우리 모두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정말로 믿고 있다"며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11일 속도조절론을 내놨고, 앙숙인 샘 올트먼 오픈AI CEO,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도 이례적으로 이 주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속도를 줄이면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중국 등 경쟁사들과 기술 격차가 좁혀질 각오도 해야 한다. 시장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폴러스는 "AI 업계 CEO들이 '속도를 늦추고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 시장은 '맞는 말이지만…이윤 추구 동기가 너무 압도적'이라고 답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훗날 우리는 왜 그들(경고론자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는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송경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