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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일어나…위패만 모시던 恨 풀어" 평안도 출신 호국영웅, 뒤늦은 귀가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1951년 3월 평창 '하진부리 전투'서 26세로 산화, 75년 만에 아들 품으로 
지난해 평창서 수습한 유해, 국군 3사단 고(故) 한길진 하사 신원 확인 
일곱 살에 헤어진 아들 자택서 귀환 행사 "국립묘지에 정중히 안장하고파"  

22일 오전, 전병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오른쪽)과 고 한길진 하사의 아들 한봉진 씨(왼쪽, 83세)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22일 오전, 전병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오른쪽)과 고 한길진 하사의 아들 한봉진 씨(왼쪽, 83세)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22일 오전, 전병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왼쪽)이 고 한길진 하사 유가족에게 유해발굴 및 신원확인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22일 오전, 전병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왼쪽)이 고 한길진 하사 유가족에게 유해발굴 및 신원확인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파이낸셜뉴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현충원에 방문해도 이름 석 자 위패만 남아있으니, 진짜 묘지에 아버지를 안장한 분들이 부러워 늘 가슴에 한이 맺혔었습니다. 이제야 그 한을 풀었습니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다 26세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호국영웅이 75년이라는 긴 세월의 강을 건너 아들의 품으로 귀환했다. 22일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유가족인 큰아들 한봉진 씨(83·1943년생)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가 거행됐다. 한 씨는 "이제라도 아버지를 국립묘지에 정중히 묻어드리고 후손들과 자주 찾아뵙고 싶다"고 소회를 전했다.

전쟁은 한 젊은 가장의 시간을 지난 1951년 3월 강원도 평창의 전선에 멈춰 세웠다. 고(故) 한길진 하사(현 계급 상병)는 1924년 4월 평안남도 평원군 덕산면에서 태어난 이북 출신의 청년이었다. 해방 이후 38선 이북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자유를 억압받자, 고인은 오직 가족들의 안녕과 자유만을 바라며 정든 고향을 떠나 삼선을 넘어 월남을 감행했다.

서울 종로구에 터를 잡고 새로운 삶을 꾸리려던 평범한 민초였던 고인은 입대 당시 겨우 일곱 살이었던 큰아들 봉진 씨를 두고 피난길에 올랐으나,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자원하여 입대해 국군 제3사단에 배치됐다.

이것이 아들이 기억하는 스물여섯 살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이었다. 전선으로 향한 고인은 1951년 3월 6일부터 12일까지 동부 산악지역의 요충지인 평창 일대에서 북한군 제9·27사단의 남하를 저지하는 '하진부리 부근 전투'에 투입됐다.

중부 내륙의 핵심 교통망인 국도 제6호선의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처절한 사투가 벌어지던 그 전장에서, 고인은 적의 공세를 온몸으로 막아서다 장렬히 전사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영웅의 유해는 지난해 9월, 평창군 진부면 상월오개리의 무명 818고지에서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과 육군 제36보병사단 장병들이 전면 굴토 작전을 전개하던 중, 36사단 유해발굴팀장이 개인호 터를 탐사하다 고인의 흔적을 최초로 식별했다. 사흘간의 정밀 발굴을 통해 왼쪽 발허리뼈와 척추뼈 등이 수습되면서 영웅은 70여 년의 차가운 흙 속에서 마침내 깨어났다.

이 뒤늦은 만남은 15년 전 아들이 남긴 간절한 단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들 한봉진 씨는 지난 2011년 6월,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 소식을 접하고 아버지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보건소를 찾아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했다. 국유단이 올해 1월부터 평창 발굴 유해를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를 진행해 기존 자료와 비교 분석한 결과, 고인과 한 씨가 친부자 관계임이 최종 증명됐다.

고 한길진 하사는 올해 국유단이 열 번째로 신원을 확인한 호국영웅이며, 지난 2000년 4월 유해발굴 사업이 시작된 이래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국군 전사자는 총 278명으로 늘었다.

국유단은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호국영웅,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한 국민 여러분의 동참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행사를 주관한 전병희 국유단장은 유가족에게 호국영웅 귀환 패와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전 단장은 "한가위를 앞두고 유가족분들께 아버지를 찾아드리는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며 "하루하루가 시간과의 싸움인 만큼, 참전용사와 유가족분들이 고령화되기 전에 마지막 한 분의 영웅까지 모두 수습해 신원을 확인하고 유가족들의 깊은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전했다.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채취는 6·25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 기준으로 친·외가 8촌까지 신청 가능하다. 제공한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2025년 9월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일대에서 수습한 국군 제3사단 소속의 고(故) 한길진 하사(현 계급 상병)의 유해. 국방부 제공
2025년 9월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일대에서 수습한 국군 제3사단 소속의 고(故) 한길진 하사(현 계급 상병)의 유해. 국방부 제공

[email protected]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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