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에 형 있었다" 김우민 수모 쓰고 기적 46초 뚫어낸 단거리 간판 김영범의 눈물 [나고야 AG]
어깨 찢어진 채 예선 뛴 에이스 김우민
막내 김영범은 형의 이름 새겨진 수모 쓰고 결승 물살 갈랐다
350m 턴까지 3위, 마지막 50m서 괴력의 스퍼트로 일본 추월
소름 돋는 은빛 터치패드
[파이낸셜뉴스] 도쿄 아쿠아틱스센터에 태극기가 펄럭이던 순간, 가장 극적인 역전극을 완성한 마지막 영자의 머리에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선수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어깨 파열의 고통 속에서도 동료들을 위해 예선을 뛰고 장렬하게 하차한 에이스, '김우민'이었다. 형의 수모를 빌려 쓰고 물에 뛰어든 막내 김영범(강원특별자치도청)이 기적 같은 46초대 괴력을 뿜어내며 숙적 일본을 꺾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4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센터에서 치러진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경영 남자 계영 400m 결승. 황선우, 김지훈, 양재훈, 김영범으로 이어진 대한민국 수영 대표팀은 3분11초69를 기록, 중국(3분10초60)에 이어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값진 은메달을 수확했다.
이날 경기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한·중·일 삼국지의 맹렬한 접전이 펼쳐지던 마지막 4번 영자 구간이었다. 350m 턴 지점까지 일본에 뒤진 3위로 밀려 패색이 짙어지던 찰나, 막내 김영범의 잠수함 스퍼트가 폭발했다. 마지막 50m 구간에서 무서운 속도로 치고 나간 그는 일본 선수를 완벽하게 제치고 극적으로 2위 터치패드를 찍었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 나타난 4명의 전사들은 벅찬 숨을 몰아쉬면서도,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한 사람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오전에 진통제를 삼켜가며 예선을 뛰어 결승 진출을 이끈 뒤, 끝내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주 종목 기권까지 선언한 김우민이었다.
특히 형의 수모를 쓰고 역전극을 연출한 김영범의 고백은 현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는 "우민이 형이 어깨 부상 탓에 준비한 것을 1%도 못 보여주고 대회를 마치게 된 아쉬움을 달래주고 싶었다"며 "형의 수모를 빌려 쓰고 레이스에 나섰는데, 그 기운 덕분인지 내 생애 처음으로 100m 구간 46초대 기록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활짝 웃었다. 옆 레인 선수들이 보일 정도로 치열한 압박감 속에서도, 형을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막내의 잠재력을 120% 폭발시킨 셈이다.
나머지 팀원들의 전우애도 끈끈했다. 첫 영자로 나서 47초50의 개인 최고 기록으로 기선을 제압했던 황선우는 "중국과 아직 1초 정도 격차가 있다. 팀원들과 더 훈련해서 반드시 3분10초대에 진입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2번 영자 김지훈은 "내 몫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는데 동료들이 빈자리를 메워줬다"며 공을 돌렸다.
특유의 굳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선 3번 영자 양재훈은 "나 화난 거 아니다. 원래 무뚝뚝할 뿐 지금 정말 기분이 좋다"고 너스레를 떨며 "단체전이라 더 예민했지만, 팀원들이 최선을 다해 뿌듯하다"고 기쁨을 만끽했다.
비록 금메달은 아시아 신기록을 세운 중국에 내줬지만,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고 남의 이름이 적힌 수모를 쓰며 극한의 한계를 돌파해 낸 대한민국 수영 대표팀. 이들이 도쿄 한복판에서 일본을 꺾고 합작한 은메달은 그 어떤 금빛보다 뜨겁고 찬란했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