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재테크

"숨만 쉬고 월 330씩 모아라?"… 8000만원 상승 서울 아파트 전세에 3040 '멘붕' [하우스 시그널]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월 200만원 저축도 빠듯한데… 2년 새 8000만원 훌쩍 뛴 전셋값
추가 대출 8000만원, 매달 허공에 흩어지는 이자만 33만원
외곽으로 밀려나는 삶… 아이의 교육과 맞바꾼 출퇴근 시간
가을 이사철의 공포, 집은 쉴 곳인가 거대한 계산서인가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 만기가 도래한 임차인은 새로 전세를 얻거나 재계약을 할 때 보증금을 2년 전보다 8천만원 이상 올려줘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27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연합뉴스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 만기가 도래한 임차인은 새로 전세를 얻거나 재계약을 할 때 보증금을 2년 전보다 8천만원 이상 올려줘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27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한 달에 200만원을 모으려면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팍팍해져야 할까. 300만원을 모으는 건 또 어떨까. 매달 들어오는 월급에서 훌쩍 커버린 일곱 살 아이의 식비와 교육비, 쉴 새 없이 날아오는 각종 공과금과 생활비를 떼어내고 나면 통장 잔고는 늘 바람 잘 날이 없다. 가계부를 쥐어짜듯 관리하고 외식 한 번, 취미 생활 한 번을 망설여야 겨우 만들어낼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토록 치열했던 우리의 시간을 비웃는다. 전세 계약 만기가 도래한 최근 2년 사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오른 폭을 보면 허탈감을 넘어 막막함이 밀려온다. 무려 8000만원이다. 2년 동안 이 돈을 모으려면 매달 330만원 이상씩, 한 해에 4000만원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저축해야 한다. 내 집 마련이라는 거창한 꿈은 고사하고, 당장 우리 가족이 비바람을 피할 전셋집 하나 지켜내는 것조차 버거운 시대가 됐다.

통계는 차갑고도 명확하게 우리의 현실을 비춘다. 한국부동산원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3662만원을 기록했다. 2년 전(5억5394만원)보다 무려 8268만원, 약 14.9%가 껑충 뛰었다.

물론 이 8000만원이라는 숫자가 당장 내일 아침 모든 세입자가 내놓아야 할 청구서는 아닐 것이다. 동네마다, 단지마다, 계약 조건마다 체감하는 온도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재계약 시기가 다가온 평범한 가장들에게 이 '평균의 상승'은 목을 조여오는 무거운 현실이다.

매달 200만원씩 피땀 흘려 모아도 8000만원을 채우려면 꼬박 40개월이 걸린다. 부족한 돈을 대출로 메우는 순간, 목돈의 압박은 매달 피를 말리는 지출의 고통으로 둔갑한다. 8000만원을 연 5% 금리로 빌린다고 가정해보자. 원금은 갚지도 못한 채 매달 은행에 바쳐야 하는 이자만 약 33만원이다.

이 33만원은 그저 숫자가 아니다. 아이가 그토록 다니고 싶어 하던 축구교실을 포기해야 하는 돈이고, 주말 나들이에서 먹는 따뜻한 외식 한 끼를 참아야 하는 돈이다. 전세보증금이야 언젠가 돌려받는 돈이라 위안 삼을 수 있지만, 허공으로 사라지는 이자는 고스란히 가계의 출혈로 남는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20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매 매물만 부착돼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 누적 상승률은 9월 둘째 주 기준 7.79%로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률의 약 4.7배에 달했다. 연간 상승률 기준으로도 이미 지난해 상승률 3.77%의 2배를 넘어섰으며, 전세 물량 부족 등의 영향으로 전세난이 심했던 2015년 10.7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20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매 매물만 부착돼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 누적 상승률은 9월 둘째 주 기준 7.79%로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률의 약 4.7배에 달했다. 연간 상승률 기준으로도 이미 지난해 상승률 3.77%의 2배를 넘어섰으며, 전세 물량 부족 등의 영향으로 전세난이 심했던 2015년 10.7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더 잔인한 것은, 집값이 부담스럽다고 해서 우리 가족의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무 자르듯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보증금에 맞춰 더 저렴한 집을 찾으려면 집 크기를 줄이거나 저 멀리 외곽으로 밀려나야 한다. 그 순간 가장의 출퇴근 시간은 길어지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땀 흘려 놀아줄 시간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다. 아이의 유치원이나 학교, 돌봄 환경까지 송두리째 흔들린다. 이사비와 중개보수 등 수백만 원의 부대비용은 덤이다. 가족의 보금자리를 옮기는 일은 결코 가격표 하나만 보고 결정할 수 있는 단순한 쇼핑이 아니다.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는 데 있다. 가을 이사철이 다가오면서 학군지를 중심으로 임차 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시장에 나올 전세 매물은 품귀 현상을 빚으며 말라가고 있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다시 고단한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에게 집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안식처여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집은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대출 한도를 계산하며, 이자 비용을 고민하게 만드는 거대한 '계산서'가 되어버렸다.

오늘도 늦은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휴대폰으로 전세 대출 금리를 검색하고 있을 수많은 대한민국의 가장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언제쯤 집이라는 공간에서 맘 편히 두 다리를 뻗고 쉴 수 있을까. 우리의 가을은 왜 이토록 춥고 시리기만 한 것일까.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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