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베낀 유명인 목소리…日 법원 "법적 보호 대상"
목소리도 퍼블리시티권 인정 첫 판단
시청자 끌어모으려 무단 사용 땐 침해
영상 이미 삭제돼 삭제 청구는 기각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일본 법원이 유명인의 목소리도 이름이나 얼굴처럼 경제적 가치를 보호받는다는 첫 판단을 내렸다.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유명인의 목소리를 흉내 내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행위도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 음성 복제가 확산되는 가운데 목소리의 법적 보호 범위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30일 NHK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에 따르면 도쿄지방재판소는 이날 인기 성우 츠다 켄지로(55)가 틱톡 운영사를 상대로 제기한 영상 삭제 소송에서 이 같은 판단을 내렸다. 다만 문제의 영상이 이미 삭제돼 삭제 청구는 기각했다. 해당 영상이 실제로 츠다의 권리를 침해했는지도 판단하지 않았다.
츠다는 애니메이션 '주술회전'의 나나미 겐토와 '골든 카무이'의 오가타 햐쿠노스케 역으로 유명한 성우이자 배우다. 지난해 11월 자신의 목소리를 AI로 무단 모방한 영상이 틱톡에 게시됐다며 소송을 냈다.
소장에 따르면 신원 불명의 게시자는 2024년 7월 이후 츠다의 목소리를 흉내 낸 내레이션으로 도시전설과 심령현상 등을 소개하는 영상을 최소 188편 올렸다. 제소 당시 팔로어는 21만명이 넘었다. 원고 측은 게시자가 영상으로 월 50만~75만엔을 벌었다고 주장했다.
츠다 측은 본인이 직접 내레이션을 한 것처럼 시청자를 혼동시켜 인기를 이용했다며 퍼블리시티권 침해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을 주장했다. 틱톡 측은 친구의 목소리를 AI에 학습시켜 만든 음성이라는 게시자의 설명을 근거로 츠다의 목소리와 혼동할 가능성은 낮다고 반박했다.
다카하시 아야 재판장은 "사람의 목소리는 초상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인격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며 목소리의 고객 유인력을 이용할 목적으로 무단 사용했다면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유명인의 이름이나 얼굴이 지닌 경제적 가치를 보호하는 권리를 목소리에도 인정한 것이다.
일본 법률에는 '목소리의 권리'가 명시돼 있지 않고 관련 재판도 드물기 때문에 이번 판결을 앞두고 관심이 집중됐다.
다만 이번 판결에서 목소리도 보호 대상임을 확인했지만 AI로 모방한 음성이 모두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삭제 청구를 둘러싼 쟁점도 별개였다. 게시자는 올해 5월 계정을 삭제했다. 츠다 측은 데이터가 완전히 사라졌는지 확인할 수 없고 영상이 다시 공개될 가능성도 있다며 삭제 명령을 요구했다. 틱톡 측은 서버에도 데이터가 남아 있지 않다고 맞섰고 법원은 계정이 이미 삭제된 점 등을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생성 AI의 발전으로 유명인의 목소리를 복제하기 쉬워지면서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본인이 하지 않은 정치적 주장이나 성적인 발언, 부르지 않은 노래까지 실제 목소리처럼 만들어 유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NPO법인 '초상·퍼블리시티권 옹호감시기구'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연예인 등의 초상이나 목소리를 무단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SNS 게시물은 누적 4만건 이상이었다. 조회 수는 약 3억3500만회, 경제적 손실은 약 20억~45억엔으로 추산됐다.
법무성도 지난 4월 전문가 검토회의를 구성하고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목소리를 법적 보호 대상에 포함한다는 보고서를 마련했다. 해석 지침에는 목소리에도 '함부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와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피해자가 게시자를 찾아 증거를 모으고 소송까지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영상 하나를 삭제해도 같은 목소리로 새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성우 가이다 유코는 아사히신문에 "근원적인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으면 계속 쏟아져 나온다"며 목소리를 무단 학습시켜 모델을 만드는 AI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요구했다.
일본 성우들은 법무성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소속사가 당사자를 대신해 대응할 수 있는 제도와 AI 개발자·서비스 제공자·플랫폼을 상대로 권리를 행사하기 쉬운 체계 마련을 촉구했다.
[email protected] 서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