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視角] 금메달보다 소중한 공정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치열한 메달 레이스만큼이나 관심을 모으는 이슈가 일부 선수들의 병역 혜택이다.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올림픽은 동메달 이상)을 따면 된다. 물론 병역 혜택이 곧 '면제'는 아니다. 병역법에 따라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된다.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544시간의 의무봉사활동을 채우면 병역의무가 끝난다. 선수 입장에선 군 입대에 따른 경기 공백이 생기지 않고, 가치가 제일 높은 시기에 계속 뛸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현행 병역특례 제도는 엘리트 체육을 육성하기 위해 지난 1973년 도입됐다.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이 명분이었으나, 그 속내는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북한에 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병역특례는 '군대 로이드'라고 할 만큼 선수들에게 확실한 동기를 부여했다. 덕분에 한국 스포츠가 크게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공정성이다. 특히 아시안게임이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병역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한 통로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합법적인 병역 브로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번 아시안게임 결과에 따라 야구는 금메달 하나로 무려 16명, 농구는 7명이 무더기로 병역 혜택을 받는다.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에는 야구에서 공 하나 던지지 않은 투수가 병역 혜택을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올해 아시안게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종목들이 등장하면서 논란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게임이 e스포츠인가' 하는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뿌요뿌요 챔피언스, 포켓몬 유나이트,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등 특정 게임 타이틀이 아시안게임의 메달 이벤트라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과거 싱가포르 국영신문사에 근무할 당시 동료가 해준 얘기가 떠오른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뒤 1967년에 의무병역제를 실시했다. 남자는 모두 18세가 되면 군이나 경찰, 소방서 등에서 2년을 복무한다. 시민권자는 물론 영주권자의 2세도 마찬가지다. 거동이 불가능하다거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예외는 없다. '본인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동료에 따르면 "왼쪽 다리가 불편한 친구는 군에서 문서수발을 담당하며 병역의무를 이행했다"고 한다. 병역 대상자의 경우 해외 출국도 제한되고, 병역을 기피하는 경우 강한 처벌(징역형)을 받은 다음 복무는 그대로 해야 한다. 싱가포르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도 병역특례는 없었다. 조셉 스쿨링은 2016년 리우 올림픽 수영에서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병역 관련 혜택은 '입대 연기'가 전부였다. 그것만 해도 '기적 같은' 엄청난 특혜였다고 한다. "한 사람의 예외를 인정해주는 순간 원칙이 무너진다. 그러다 보면 원칙에 따라 병역의 의무를 다한 이들과의 형평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 싱가포르 정부의 판단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병역의 의무는 '신성한' 것이라고 배웠다.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원칙적으로는) 누구나 한 번은 짊어져야 한다. 예외는 가능한 한 없어야 하고,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우리 사회가 수긍할 수 있을 만큼 엄격하고 일관성 있는 기준이 요구된다. 'K팝, K컬처를 전 세계에 알린 일등 공신 방탄소년단(BTS)도 군대에 갔으니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도 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를 지탱하는 한 축인 공정(公正)과 그 기준에 대한 얘기다. 공정의 가치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의 금메달보다 훨씬 크고 무겁다. 병역특례를 도입한 지 50년이 넘게 지났고, 세상은 달라졌다. 그사이 한국은 반도체가 세계 1등을 다투고, 주요 20개국(G20)에 들어갔으며, 10대 무역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국위선양을 전제로 한 병역특례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손질할 때가 됐다. 본래의 목표와 정당성을 재검토한 뒤 국민적인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