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고금리·고유가·물가' 3대 악재에도..韓·美 증시 버티는 이유는?

강중모 기자
파이낸셜뉴스

AI 붐·반도체 이익 사이클, 국내 증시 버팀목 역할
명목 성장률 8.5%, 고금리 충격 흡수하는 기업 실적
근원물가 둔화에 긴축 우려 완화, 장기금리는 변수

지난 1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글로벌 기준금리의 고공행진과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드는 국제유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물가 불안까지 거시경제 환경은 악재로 가득하다. 이론적으로는 주식시장이 큰 폭의 조정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고금리·고물가·고유가의 '3고' 국면이다.그러나 코스피를 비롯한 한미 증시는 예상과 달리 견조한 하방 경직성을 보이며 버티고 있다. 시장에서는 "악재가 쌓이는데도 증시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이어진다.

2일 증권업계에서는 그 배경으로 국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업 실적의 방어력, 고금리 충격을 흡수하는 미국의 경제 성장세, 기저 인플레이션 안정에 따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과잉 긴축 우려 완화 등을 꼽고 있다.

거시경제 환경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기업의 이익 체력과 통화정책의 불확실성 완화가 증시의 급격한 하락을 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AI 붐과 반도체 이익 사이클 '방패' 역할
국내 증시가 글로벌 긴축의 파고 속에서도 버티는 핵심 배경으로는 반도체 대형주의 실적 개선 기대가 꼽힌다.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기업들이 견조한 이익 흐름을 이어가면서 지수 하단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증권 글로벌전략팀의 문남중 연구원은 "글로벌 AI 붐이 지속되는 가운데 반도체 상승 사이클에 진입하면서 첨단기술 제품 내 한국 공급망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매우 견조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뉴욕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전경. 뉴시스
미국 뉴욕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전경. 뉴시스

고금리로 전반적인 유동성이 위축되더라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과 인프라 투자라는 거대한 흐름이 국내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대한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AI 연산 수요 확대에 따른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성장 기대가 국내 증시의 차별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의 관심은 오는 8일 예정된 삼성전자의 3분기 잠정실적 발표에 쏠려 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의 실적 개선 기대가 커지고 있으며, 앞서 발표된 마이크론의 긍정적인 실적과 맞물려 AI 반도체발 이익 모멘텀이 국내 증시의 하방을 지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 4%인데, 성장은 8.5%"…이익이 고금리 충격 흡수
미국 경제의 견조한 성장세도 고금리 환경에서 증시가 버티는 이유로 꼽힌다. 높은 금리가 기업과 가계에 부담을 주고 있지만, 경제의 외형 성장과 기업들의 이익 증가 속도가 이를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확정치가 전기 대비 연율 2.2%로 상향 조정된 데 이어 명목 GDP 성장률은 8.5%에 달했다고 짚었다.

박 연구원은 "명목 GDP 성장률이 정책금리 4.0%를 크게 웃돈다는 것은 경제가 고금리 충격을 충분히 방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경제의 외형이 빠르게 커지는 상황에서는 높아진 이자 비용과 자본 조달 부담이 기업 활동 전반을 위축시키는 효과도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 이익도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iM증권에 따르면 미국 비금융기관의 2분기 기업이익은 명목 GDP 대비 9.8%로 1966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통상 금리가 상승하면 미래 이익의 현재 가치가 낮아져 주식 밸류에이션에 부담을 준다. 그러나 기업들이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자본 비용 상승을 흡수하고 있는 만큼, 금리 상승만으로 증시의 추세적 하락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근원 PCE 둔화..추가 긴축 공포 진정…장기금리는 '뉴노멀'
물가와 중앙은행의 긴축에 대한 우려가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점도 증시 하락을 막는 요인이다. 특히 미국의 근원 개인소비지출(Core PCE) 물가 상승률이 시장 예상치를 밑돌면서 연준의 추가 긴축 가능성에 대한 경계가 다소 완화됐다.

대신증권 매크로팀의 이정훈 연구원은 미국 8월 근원 PCE 물가지수에 주목했다. 8월 근원 PCE는 전년 동월 대비 3.0% 상승해 시장 예상치인 3.3%를 밑돌았다.

이 연구원은 "통계 측정 방식 개편 영향이 동반됐으나 6개월 연율화 기준 상승률이 2.7%까지 둔화되는 등 기저 인플레이션의 모멘텀이 상당히 완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 일각에서 우려하던 연내 3~4회 추가 금리 인상은 과도한 기우"라며 "근원 PCE 상승률이 2%대 중후반을 유지하는 한 연준이 과잉 대응에 나설 유인은 없다"고 진단했다. 물가 불안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연준이 추가 긴축으로 대응해야 할 압력은 시장의 우려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미국 장기 국채금리 상승도 구조적 변화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신증권 문남중 연구원은 전쟁 대응과 경기 부양을 위한 국채 발행 증가, 빅테크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확대 등이 장기금리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금리 상승을 경기 침체의 전조로만 해석하기보다 재정지출 확대와 자금 조달 수요 증가에 따른 구조적 변화, 이른바 '뉴노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실적과 AI 인프라 투자가 지속되는 한 장기금리 상승만으로 위험자산의 상승 추세가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문 연구원의 진단이다.

가장 큰 관건은 결국 유가가 될 전망
다만 증시가 안도 랠리를 이어가기에는 국제유가라는 복병이 남아 있다. 유가 상승이 물가를 다시 자극할 경우 연준의 통화정책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이는 주식시장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iM증권에 따르면 9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월평균 가격은 배럴당 95.7달러로 8월 평균인 82.5달러보다 약 16% 상승했다. 유가와 미국 디젤 가격 상승분이 8월 물가 지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발표될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일시적으로 상승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한 시민이 주유를 하고 있다. 뉴스1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한 시민이 주유를 하고 있다. 뉴스1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실적 발표를 통해 국내 대형주의 이익 체력을 확인한 뒤, 오는 14일 발표될 미국 9월 CPI를 통해 유가 충격의 강도를 점검하는 과정이 단기 증시의 방향성을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현재 증시는 반도체 실적과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고금리 충격을 흡수하는 가운데 고유가와 장기금리 상승이라는 부담이 맞서는 구도다.
악재 속에서도 증시가 하단을 지켜내는 힘은 확인되고 있지만, 이를 추세적 반등으로 연결하려면 물가와 에너지 가격의 안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시각이다.

기업 실적이 금리 부담을 계속 상쇄하고 물가 둔화 흐름이 유지된다면 시장의 급격한 하락 우려도 완화될 수 있다. 반대로 유가 상승이 물가 불안을 재점화할 경우 증시의 버티기 국면이 새로운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다.

[email protected] 강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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