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 한 대에 10년이 젊어진다?…성장호르몬의 '회춘 실험'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성장호르몬이 완전히 고갈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가장 극단적인 예는 뇌에 외상을 입어 뇌하수체 기능을 상실한 사람이나, 뇌종양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으로 성장호르몬 결핍증에 걸린 환자를 통해 볼 수 있다.
이 환자들은 인체의 전반적인 노쇠가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근육과 골밀도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감소하고 심혈관질환으로 인해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피로, 불안, 우울 등 정신적인 문제도 발생한다. 성장호르몬 대체요법을 실시하지 않으면 불과 몇 개월~몇 년 안에 사망하게 된다.
물론 노년기의 자연스러운 성장호르몬 감소는 이 정도까지 심각하지는 않다. 보통은 근육이 점점 빠져 걸음걸이와 행동이 느려지고 기력이 떨어지는 정도로 나타난다. 또 골밀도가 줄어들면서 뼈가 약해진다. 특별히 많이 먹지도 않는데 복부와 옆구리에 살이 찐다. 툭하면 감기에 걸리고 몸에 염증이 잘 난다. 조금만 활동을 하면 호흡이 가빠진다. 대화에 집중이 잘 안 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잠을 자도 피곤하기만 하고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는다. 모두 우리가 '노화'라고 부르는 증상들이다.
물론 이런 증상들의 원인이 성장호르몬 하나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노년기가 되면 성장호르몬뿐만 아니라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 등 성호르몬이 급격히 줄어들고 멜라토닌과 인슐린의 분비 기능도 모두 저하되기 때문이다. 인체의 모든 장기와 조직이 나이가 들어 약해지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로 인해 60대가 되면 모두 한두 가지 질병을 안고 살게 된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골다공증, 관절염, 심장질환, 폐질환, 갑상선질환 등은 노년기와 매우 친한 질병이다.
질병은 자연스러운 노화의 결과이고 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노화의 결과다. 이러한 노화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노화가 진행되더라도 성장호르몬이 좀 더 분비된다면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
1990년 미국 위스콘신 의대 연구팀은 성장호르몬이 노화를 늦춘다는 가설을 세우고 건강한 노인에게 성장호르몬을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이전까지 성장호르몬 연구와 치료는 오직 성장호르몬 결핍증 진단을 받은 아동이나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성장호르몬이 결핍되지는 않았으나 나이가 들어 자연스럽게 분비량이 줄어든 사람을 대상으로 성장호르몬을 투여하는 것은 이 실험이 처음이었다.
연구팀은 혈장의 인슐린유사성장인자-1 수치가 젊은 성인에 비해 현저히 낮은 61~81세 남성 21명을 모집했다.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은 성장호르몬에 의해 간에서 분비되는 또 다른 호르몬으로 펄스식 분비를 하는 성장호르몬과 달리 일정한 혈중농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성장호르몬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연구진은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 그룹에는 6개월 동안 주 3회 체중 1킬로그램당 0.03밀리그램의 성장호르몬을 피하주사로 투여하고, 다른 한쪽 그룹에는 아무것도 투여하지 않았다. 이후 이들의 제지방량(lean body mass·지방량을 제외한 몸무게), 지방량, 피부두께(표피에 진피를 더한 두 께), 골밀도 등의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아무것도 주입받지 않은 그룹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으나 성장호르몬을 주입받은 그룹은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수치가 젊은 성인의 수치까지 뛰어올랐고 지방량은 14.4%가 감소했다. 또한 제지방량은 8.8%, 골밀도는 1.6%, 피부두께는 7.1% 증가했다. 단지 성장호르몬을 투여하는 것만으로 뼈가 튼튼해지고 살이 빠지고 피부가 탱탱해지는 등 10~20년 젊어지는 효과를 얻은 것이다.
2003년 미국 워싱턴대 정신행동과학과 연구팀도 비슷한 실험을 진행했다. 단, 이들은 성장호르몬을 직접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장호르몬 방출호르몬을 주입하여 뇌하수체가 성장호르몬을 분비하도록 자극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65세 이상의 남녀 6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5개월 동안 실험을 진행한 결과, 성장호르몬 방출호르몬을 주입받은 그룹은 수면 중 성장호르몬 분비량이 35% 증가했고 혈중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수치도 남자는 평균 50%, 여자는 20% 증가했다. 이는 30대의 건강한 성인의 분비량에 해당한다. 동시에 피실험자들은 지방량이 감소하고 인지능력이 상승했다.
2012년 같은 연구팀이 성장호르몬의 인지능력 향상 효과에 대해 더 희망적인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들은 55~87세의 남녀 137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 그룹에는 총 20주 동안 매일 1밀리그램의 성장호르몬방출호르몬을 직접 피하주사하게 하고, 다른 한 그룹에는 플라시보를 주사하게 했다. 137명 중 61명에겐 경도인지장애가 있었고 나머지는 인지능력이 정상인 건강한 노인이었다.
그 결과 건강한 노인들의 인지능력은 플라시보 그룹에 비해 언어 기억력, 임무 수행능력, 집중력 등에서 모두 월등히 높았다.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노인들은 인지능력이 정상 수준으로 높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플라시보 그룹에 비해서는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성장호르몬 요법이 치매를 예방하거나 치매의 진행을 늦추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