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정지우 감독 "나나는 죽고 싶을 것 같다고 했지만…사랑 때문에 죽는 건 옛 풍경"
넷플릭스 오리지널 8부작 드라마
[파이낸셜뉴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가 나온 지도 어느덧 23년이 흘렀다. 그사이 세상도, 사랑과 욕망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도 달라졌다. 익숙한 이야기를 지금 다시 꺼내려면 이유가 필요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캔들'을 연출한 정지우 감독은 국내 관객에게 친숙한 영화보다 그 출발점인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로 돌아갔다. 1782년 발표된 이 서간체 소설은 프랑스혁명 전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사랑과 욕망을 유희처럼 다루는 메르테유 후작부인과 발몽 자작의 유혹과 복수, 파멸을 그린다. 정 감독은 원작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봤다.
그 결과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이야기를 이끄는 세 인물이다. 특히 조씨 부인의 비중이 커졌다. 그는 단순한 악녀가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욕망으로 시대의 벽을 넘으려는 인물로, 희연은 사랑에 배신당하고도 자기 의지로 살아남는 여성으로 거듭났다. 바람둥이 조원 역시 사랑과 집착, 복수심이 뒤엉킨 속내를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인물로 재해석됐다. 지난 9월 공개 이후 재미와 화제성 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세 인물을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롭게 해석한 시도만큼은 눈여겨볼 만하다.
날것의 이미지가 매력인 나나를 과부 희연으로 캐스팅한 것도 이러한 방향과 맞닿아 있다. 정 감독이 원한 것은 전통적인 여성상에 어울리는 외모보다 감정을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배우였다. '마스크걸'에서 나나를 눈여겨봤다는 그는 '스캔들' 공개 이후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그녀가 감정을 쓰는 방식, 날것의 감정으로 다가가려는 태도가 캐스팅의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고 말했다.
희연을 새롭게 만드는 결정적인 지점은 진실을 안 뒤 그의 선택이다. 죽음을 강요받던 여성이 사랑을 통해 삶의 의지를 얻는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 사랑이 장난이었고 자신이 내기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살아갈 수 있는가. 정 감독은 바로 그 대목에서 익숙한 비극의 결말을 바꾸고 싶었다.
그는 "전통적인 서사라면 희연이 죽을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며 "자기 의지로 살아남는 인물이 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조원과의 사랑은 희연에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일깨우지만, 그것만이 삶의 이유가 돼서는 안 됐다.
이 선택을 두고 촬영 현장에서도 긴 대화가 오갔다. 배우 나나는 희연의 감정이라면 죽고 싶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는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거는 것은 옛 풍경"이라고 설득했다.
희연의 선택에는 사랑뿐 아니라 천주교 신앙도 영향을 미친다. 작품의 배경은 수원화성을 축조 중이라는 설정으로 미뤄볼 때, 정조가 재위하던 1790년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성리학적 질서가 여전히 강고한 가운데 실학과 서학 등 새로운 사상이 스며들던 시기다. 남편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과부가 된 희연에게 시어머니와 사회는 절개를 지키다 죽어 '열녀'가 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희연은 천주교를 접하고 조원을 만나면서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
정 감독은 "희연의 변화가 조원에게서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며 "희연은 죽으면 안 된다는 것이 2026년에 이 작품을 만드는 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나나의 부푼 입술 등 외모를 둘러싼 일부 비난에는 감독으로서 책임을 떠안았다. 배우와 오랜 시간 나눈 것은 외형이 아닌 감정과 내면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프레임 안의 시각 정보는 감독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