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대머리가 왜 있겠냐" 냉대 딛고 20년… 변화로 쓴 호남 모발 이식의 역사 [탈모 전문가 100인 인터뷰]
[강광영 전주 모래내모발이식센터 원장]
호남 최초 모발 이식 개척부터 첨단 장비 도입까지 '낯선 혁신'
"단순 미용 아니라 '복리 행복' 선물하는 치료" 철학으로 한 길
[파이낸셜뉴스] 강광영 모래내모발이식센터 원장은 모발 이식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2000년대 초, 불모지나 다름없던 호남 지역에 모발 이식의 닻을 올렸다. 배움에 대한 일념으로 매주 2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 술기를 익혔고, 로봇 비절개 수술과 멀티 식모기라는 낯선 분야를 만났을 때도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모발 이식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그는 여전히 '변화 추구형' 삶을 살고 있다.
― 호남 지역에서 모발 이식을 개척했다.
▲2000년에 전북대병원에서 피부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전주에 개원한 가족의 병원에 합류했다. 새로운 시작인 만큼 특별한 걸 해보고 싶어 은사님께 조언을 구했더니, 모발 이식을 권유하시며 경북대병원 교수님을 통해 김정철 교수님을 연결해 주셨다. 김 교수님은 우리나라에서 모발 이식 분야를 개척한 분이다.
― 그렇게 1년 넘게 전주와 대구를 오갔다.
▲ 피부과를 운영하면서 주말마다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를 찾았다. 보통 아침 9시에 수술이 시작되니 참관하기 위해서는 새벽 4~5시에 출발해야 했다. 그런데 힘들지 않았다. 배울 생각을 하면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조차 재미있었다.
당시 대구에서는 김 교수님과 그 제자들을 중심으로 학회, 강연, 라이브 서저리(실시간 수술 중계)와 같은 교류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수술실 안팎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갓 태동하는 모발 이식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 첫 수술을 기억하고 있나.
▲ 완연한 봄이 찾아온 5월이었다. 의대 후배를 수술했는데 감사하게도 김 교수님이 직접 전주를 찾아 지도를 해주셨다. 기억에 남는 것은 교수님께 배운 대로 준비하고 여러 번 검토를 했는데도 수술 당일 부족한 부분이 보였다는 점이다. 또 김 교수님은 수술을 위한 디자인부터 채취, 이식까지 물 흐르듯이 진행하셨지만 실제로 직접 해보려니 어렵기만 했다. 그래도 결과는 매우 좋았다. 후배도 2~3년 뒤에 모발 이식을 더 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2차 이식은 혼자 집도했다.
― 그 수술을 계기로 호남 지역에서 알려졌나.
▲ 그렇지 않다. 세계적으로도 모발 이식이라는 분야가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가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도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가 있는 영남에서만 조금 알려졌을 때다. 전주에서는 환자들에게 모발 이식을 설명하면 위아래로 훑어보며 "그럼 대머리가 왜 있겠냐"라고 되물을 정도였다.
그래서 홍보, 강연, 방송 출연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근 10년을 모발 이식을 알리는 데 매진했고, 워낙 환자가 드무니 원하는 환자가 있다면 주말에도 수술을 했다. 모발 이식에 대한 인식은 아주 서서히, 천천히 넓어져 왔다.
― 급격하게 변화한 분야가 아니기에 임상 경험을 더욱 탄탄하게 쌓을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그렇다. 2000년대 초 모발 이식을 시작한 의사들을 소위 '1세대'라고 부르는데, 모두 많은 시도를 해왔다. 나 역시 절개 수술로 시작했지만 절개 수술을 두려워하는 환자들을 위해 로봇을 활용한 비절개 수술을 국내에서 2~3번째로 도입했다. 또 바늘 하나에 모낭 하나를 로딩(Loading)하는 단일 식모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될 당시 여러 개의 모낭을 로딩할 수 있는 멀티 식모기를 사용하는 등 변화를 마주하고 술기를 발전시키는 데 매진했다.
― 로봇을 활용한 비절개 수술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 모낭을 채취할 때 후두부에 로봇을 접촉하면 로봇이 각 모낭의 각도와 깊이 등을 스스로 파악해 채취하는 방식이다. 인공지능이 장착돼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지금에야 인공지능이 화제지만 로봇을 도입할 당시인 2015년에는 매우 획기적이었다. 매우 고가이기도 했고.
해당 로봇을 통해 수술 기법을 많이 배웠고, 실제 수술도 꽤 많이 진행했다. 수술 건수가 세계적으로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서양에서 만들어진 로봇이다 보니 동양인 환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면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로봇보다 내가 더 잘하는 날이 왔다(웃음).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 멀티 식모기는 여전히 사용한다고 들었다.
▲ 맞다. 식모기는 채취한 모낭을 바늘에 로딩한 후, 두피에 찔러 심는 기구다. 보통 바늘 하나에 모낭 하나를 로딩한다. 3000모를 심기 위해 식모기를 3000번 교체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멀티 식모기는 한 번에 10개의 모낭을 로딩한다. 식모기를 1번 교체하면 10개의 모낭을 심을 수 있어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식모기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의사 시선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구체적으로 얼마나 단축되나.
▲ 단일 식모기로 모낭을 심으면 한 개 당 약 2초가 소요된다. 멀티 식모기는 모낭 10개에 10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시간 단축은 대량 모발 이식에서 더욱 체감된다. 5000모 이상을 심을 때 단일 식모기를 사용하면 3~4시간이 걸리지만, 멀티 식모기를 사용하면 1시간 30분 내외로 끝난다.
― 멀티 식모기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단일 식모기를 쓰는 병원이 더 많지 않나.
▲ 각자에 맞는 수술 방법이 있지 않겠나. 나 역시 멀티 식모기를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불편한 면이 더 컸다. 단일 식모기보다 크기가 커 손에 쥐는 것조차 어색했다. 멀티 식모기를 개발한 김문규 교수님이 꾸준히 업그레이드하며 내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식모기에 대한 견해도 다양하다. 나는 단일 식모기에 모낭을 하나하나 로딩하는 것, 수술 시간 내내 스텝이 선 채로 식모기를 전달하는 것이 고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혹자는 멀티 식모기에 모낭을 10개씩 로딩하는 것이 더 어렵고 고되다고 말하거나 멀티 식모기의 부피감이 불편하다고 한다. 아예 식모기를 사용하지 않는 의사도 있다. 이식할 부위에 칼집을 낸 다음 채취한 모낭을 집어넣는 '슬릿' 방식을 선호하는 것이다. 수술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 멀티 식모기 사용부터 로봇 수술, 그보다 앞서 모발 이식을 배운 것까지 도전에 거침이 없어 보인다.
▲ 그저 변화의 과정에 있었고, 그 변화에 적응해 온 것이다. 모발 이식이라는 새로운 변화가 생기던 시절 김정철 교수님을 만나 가르쳐주시는 대로 익혔고, 단일 식모기 사용을 제안 받았을 때는 단일 식모기를 사용했다. 인공지능 로봇, 멀티 식모기도 마찬가지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시대를 마주할 수 있도록 먼저 제안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으니 말이다.
― 이제 모발 이식을 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여전히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나.
▲ 그렇다. 세계모발이식학회에 매년 참석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변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 모발 이식 분야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지, 각 나라의 석학들이 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모발 이식은 알아갈수록 재미있는 분야이고, 알아갈수록 잘할 수 있는 분야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앞으로의 목표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인가.
▲ 한 가지 더 보태자면 환자들에게도 변화를 만들어 주고, 그 변화를 지켜보고 싶다. 한동안 모발 이식을 한 환자들과 함께 운동 모임을 했다. 환자들의 경과도 지켜보고, 후기와 더불어 조언도 듣기 위해서였다.
모발 이식 후 '젊어 보인다'라는 말을 들은 환자는 대중교통에서 노약자석에 앉을 수 있는 나이라도 자리를 비워둔다고 하더라. 젊어 보이는 것을 넘어 '젊게 살기 위해서'다. 모발 이식 후 자신감이 붙어 취업에 성공하기도, 결혼에 성공하기도 했다. 모발 이식은 단순한 미용 수술이 아니라 내면의 자신감을 끌어내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복리의 효과를 가져오는 치료라는 것을 환자들에게 배웠다. 앞으로도 환자들이 마주할 변화의 시작점에서 함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mail protected] 김현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