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의 눈에 비친 '암살자(들)' 파문… K-콘텐츠의 눈부신 성취 뒤편 검열의 그림자 [박지현의 아트월드]
[파이낸셜뉴스] "세계 4대 영화제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영화의 주연 배우가 본국에서는 경찰이 지급한 스마트워치를 차고, 야당 국회의원 109명은 해외 영화제에 상영을 취소하라는 서한을 보낸다."
최근 며칠 사이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전문 매체 '버라이어티'를 필두로 영국의 '인디펜던트',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싱가포르의 '스트레이츠 타임스', 인도의 '힌두스탄 타임스' 등 글로벌 언론들이 일제히 타전한 한국 문화계의 모순적 풍경이다. 세계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찬사를 받던 K-콘텐츠의 본산에서, 영화 한 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괴한 사상 검증과 정치적 외압이 글로벌 영화 산업계에 '창작의 자유 위기'라는 경고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10일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이 개봉 보름 만에 25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음에도, 외신들은 한국 사회가 과연 표현의 자유를 감당할 문화적 성숙도를 갖추었는지 깊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외신들이 특히 경악을 금치 못하는 지점은 비판의 화살이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를 넘어 창작자와 배우 개인의 일상과 생존권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버라이어티'는 이번 논란을 전하며 영화가 특정 배후를 단정 짓지 않고 열린 영화적 가설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내 보수 정치권이 이를 '정치적 선동'으로 낙인찍어 국제 영화제 개막작 상영 철회까지 압박하는 전례 없는 사태로 번졌다고 짚었다.
홍콩 SCMP와 싱가포르 CNA, 스트레이츠 타임스 등도 지난 9일,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 전원이 싱가포르국제영화제(SGIFF)에 서한을 보낸 사실과 일부 극단주의 단체들이 주한 싱가포르 대사관과 관광청까지 압박하고 있는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정치권의 원색적인 공세 역시 외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야당 주진우 의원은 지난 8일 배우들의 통상적인 계약 방식인 러닝 개런티(흥행 인센티브) 내역을 공개해 '부당 이익'으로 매도했고, 배우 유해진의 외모를 "북한상"이라 조롱하는 인신공격까지 가했다. '인디펜던트'는 이러한 정치적 선동이 극우 단체의 자택 앞 확성기 시위와 "정치적 균형을 위해 우파 영화에도 출연하라"는 요구로 번졌으며, 결국 주연 배우가 경찰 신변 보호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렸다. 한국 영화계 19개 단체가 "영화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 영화인 개인을 공격하지 말라"며 긴급 성명을 낸 배경이 전 세계에 낱낱이 타전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개입 앞에서도 국제 영화계의 원칙은 단호했다. 싱가포르국제영화제는 "제작진의 창의적 비전을 전적으로 존중하며 변함없이 개막작으로 상영한다"고 못 박았다. 영화제 측은 예술적 성취와 아시아 영화에 대한 기여도를 바탕으로 독립적인 큐레이션을 거쳤음을 분명히 하면서, 한국 정치권의 초국경적 검열 시도를 일축했다.
미국과 유럽 매체뿐 아니라 인도의 최대 유력 일간지 중 하나인 '힌두스탄 타임스' 등이 한국의 이번 사태를 긴 호흡으로 심층 분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예술 작품이 특정 정치 세력이나 종교적 도그마의 표적이 되어 폭력적인 탄압으로 비화했던 뼈아픈 역사가 세계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해외 선례는 2018년 인도를 뒤흔든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의 '파드마바트' 사태다. 14세기 힌두교 왕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힌두교의 순결성과 역사를 왜곡했다는 우파 극단주의 단체들의 광기 어린 공격을 받았다. 촬영 세트장이 전소되고, 감독과 주연 여배우 디피카 파두콘의 목에 거액의 현상금이 걸렸으며, 정치인들은 표심을 의식해 4개 주에서 상영 금지 처분을 내렸다. 허구적 서사를 빌미로 배우의 신변을 위협하고 사생활을 파괴하는 현재 한국의 상황과 판박이다.
종교적 도그마가 테러로 이어진 비극도 있다. 1988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예수의 인간적 고뇌를 다뤘다는 이유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극렬한 반발을 샀고, 급기야 프랑스 파리 상미셸 극장에서 극우 가톨릭 단체의 화염병 방화 테러로 번져 관객 1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정치권력이 직접 예술을 통제하려 했던 사례로는 2014년 러시아의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작 '리바이어던'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으며 세계적 찬사를 받았지만, 러시아 문화부와 유력 정치인들은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고 세금을 축내는 반국가적 찌꺼기"라며 상영관 확보를 가로막고 관객의 관람권을 박탈했다. 심지어 러시아 정부는 지난달 18일 즈비아긴체프 감독을 자국의 '외국 대리인(foreign agent)' 명단에 올리며 '스파이'로 낙인찍었다. 한국의 야당 국회의원들이 모태펀드 투자를 문제 삼고 해외 영화제 상영 철회 서한을 보낸 행태와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주목할 점은 이처럼 참혹한 검열과 탄압의 광풍 속에서도 결국 살아남은 것은 권력이 아닌 '작품'이었다는 사실이다. '파드마바트'는 폭력 사태 속에서도 인도 영화 흥행 역사를 다시 썼고, '암살자(들)' 역시 국내외의 거센 외압 속에서 250만 관객의 확고한 지지를 얻고 있다.
영화 '암살자(들)'은 사라진 총알과 의문투성이 수사 기록이라는 역사적 공백 위에, 유신이라는 엄혹한 시대에도 진실을 추적하려 했던 평범한 경찰과 기자들의 분투를 그려낸 극영화다. 픽션에 대한 역사적 논쟁과 비판은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표현의 자유다. 그러나 그것이 스크린을 벗어나 배우의 외모를 조롱하고, 사생활을 위협하며, 국제 영화계에 압력을 행사하는 폭력으로 변질되는 순간, 그것은 비판이 아닌 '야만적 검열'이 된다.
밖으로는 가장 개방적인 문화 강국을 자임하면서, 안으로는 정치적 허락과 사상 검증을 강요하는 모순. 세계 무대의 냉정한 시선 속에서, 한국 사회의 문화적 포용력과 민주주의 수준이 시험대에 올랐다.
[email protected] 박지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