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 받으면 끝인가"...銀해킹 계기 '전면 집단소송법' 부상
[파이낸셜뉴스] 최근 주요 시중은행의 고객 정보가 유출되는 등 집단 피해가 잇따르며 피해자들도 기업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국회에서도 '전면적 집단소송법' 입법을 추진하며 앞으로는 소송 참여 여부와 무관하게 피해를 보상하게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피해 규모와 보상까지 소요된 시간을 고려하면 피해자들의 실익이 크지 않았다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기업들의 소극적인 투자·영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 해킹에 따른 피해보상을 위해 일부 로펌에서 원고를 모집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청구액은 10만~30만원 수준에서 검토되고 있다.
지난 1일 신한은행에서는 해킹공격으로 약 2만5000여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이름, 전화번호, 연계정보(CI), 연소득, 대출 한도 등 대출 신청 관련 개인정보다. 일부 고객의 주민등록번호 66건과 CI 97건 등이 포함됐다.
신한은행 외에도 KB국민은행, 하나은행, BNK부산은행, 예가람·웰컴저축은행, 현대캐피탈 등에서도 해킹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했다. 금융권은 실제 피해와 인과관계를 확인해 보상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전체 피해 규모에 비해 소송에 참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법정에서 보상금이 확정될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고, 그 액수 역시 크지 않아서다.
2014년 KB국민·NH농협·롯데카드 등 카드 3사에서 1억여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을 때 사법부가 내린 최종 결론은 '1인당 10만원' 배상이었다. 피해자는 연인원 1억명, 중복을 제외해도 2000만명에 달했지만 5년간의 소송 끝에 2019년 대법원에서 10만원을 확정받은 이들은 소장에 이름을 올린 수십만명에 그쳤다.
2015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배출가스 조작)' 사건에서는 더 극명하게 격차가 나타났다. 미국 법원은 징벌적 배상과 환매(바이백)를 포함해 차주 1인당 최고 1만달러(약 1300만원) 안팎의 배상 합의를 이끌어냈다. 반면 한국 법원이 국내 차주들에게 인정한 손해배상액은 1인당 100만원 수준에 그쳤다.
수백명의 사망자를 낳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10년 넘게 개별 소송을 진행했다. 피해자들이 독성 데이터 은폐와 인과관계를 법정에서 홀로 입증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서다.
현행 민사소송법은 피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직접 소송에 참여해야 효력을 인정하는 '옵트인(Opt-in)'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대다수가 몇만원을 보상받자고 번거로운 소송 절차를 밟는 것을 기피하는 이유기도 하다. 2005년 도입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존재하지만, 분식회계나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 일부 영역에 국한돼 대규모 소비자 피해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국회에서는 증권분야로 묶여있던 적용 범위를 개인정보 유출, 제조물 책임, 소비자 거래 등 손해배상 전 분야로 전면 확대하고, 피해자 전원을 보상에 포함하는 '옵트아웃(Opt-out)'과 기업 내부 데이터를 증거로 확보하는 '디스커버리 제도'를 묶어 '전면적 집단소송법'을 추진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의 소송 리스크 관리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맞게 된다. 소송 참가자 규모에서 마무리되던 분쟁이 피해자 전원을 대상으로 한 수천억~조 단위 단일 리스크로 증폭될 수 있어서다. 한 송무 전문 변호사는 "과거에는 소송 발생 후 사후 합의로 통제할 수 있었지만, 전면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선제적 보안 설비 투자와 품질 검증 체계 구축이 기업 존폐를 가르는 필수 영역이 된다"고 짚었다.
산업계와 경제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소송 남발 방지 장치가 미흡할 경우 기획 소송이 횡행해 자금력과 법무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단 한 번의 분쟁으로 파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 법 시행 전 발생한 사고에 대한 소급적용 여부와 기업의 정당한 영업비밀이 소송 과정에서 무차별 누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이 많은 미국과 달리 과징금, 과태료에 민사소송까지 적용하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 과도한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며 "리스크 대비에 들어가는 비용이 폭증한다면 투자·성장 비중은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보, 제조분야의 경우 AI 등 기술발전이 급격히 이뤄지며 대응이 뒤따라가는데 시간이 소요된다"며 "기업의 책임에서도 산업별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이창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