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한다더니 딴 세입자"... 대법, 집주인 책임 첫 기준
실거주 이유로 갱신 거절한 뒤 2년 안에 전세... 1·2심 결론 갈려
대법 "예측 못 했고 불가피했어야... 입증은 집주인 몫"
[파이낸셜뉴스]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한 집주인이 2년이 지나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집을 세놨다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 점을 집주인이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달 10일 세입자 A씨가 집주인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B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3079만9992원을 배상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20년 7월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를 보증금 6억6000만원에 2년간 빌렸다. 계약 종료를 앞둔 2022년 5월 A씨가 계약갱신을 요구하자 B씨는 자신이 들어와 살겠다며 거절했고, A씨는 집을 비웠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한 번 쓸 수 있게 하고 집주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절하지 못하도록 한다. 갱신되면 임대차 기간은 2년으로 본다. 다만 집주인이나 그 직계존비속이 실제로 살려는 경우에는 거절할 수 있다. 대신 갱신됐을 기간이 끝나기 전에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세를 놓으면 세입자가 입은 손해를 물어줘야 한다.
B씨는 2022년 9월 이 아파트로 전입신고를 하고 2023년 2월 입국해 2024년 4월까지 살았다. 그러다 갱신됐더라면 기간이 끝났을 2024년 9월보다 앞선 그해 2월, 이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보증금 8억2000만원에 2년간 세놨다. A씨는 법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B씨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맞섰다. 남편과 함께 가진 다가구주택의 임차인 6명이 한꺼번에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는데 돌려줄 돈이 6억9000만원인 반면 새 임차인에게 받은 돈은 1억8000만원에 그쳤고, 소득이 없어 대출도 받을 수 없었으며 집을 팔면 양도소득세 약 3억원을 물어야 했다는 것이다. 갱신을 거절할 당시에는 예상할 수 없던 사정이라고도 했다.
1·2심 판단은 정반대로 갈렸다. 1심인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5월 전세사기 여파로 임차인 6명이 동시에 보증금 반환을 요구한 것은 갱신 거절 당시 예측할 수 없던 사정이고 제3자에게 세를 놓는 것도 불가피했다며 A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2심은 올해 4월 1심을 뒤집고 B씨에게 3079만9992원과 지연손해금을 물어주라고 했다. 다가구주택의 보증금 반환 채무는 갱신 거절 당시 이미 생겨 있었고, 2024년 2월께 갚을 때가 온다는 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봤다. 보증금을 마련할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를 고른 것일 뿐 불가피한 사정으로 보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을 유지하면서 '정당한 사유'의 두 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임대인이 갱신거절 당시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으로 인하여 제3자에게 목적 주택을 임대하였어야 하고, 제3자에게 목적 주택을 임대하는 것이 불가피하였어야 한다"며 "위와 같은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에 대한 증명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고 밝혔다.
증명책임이란 어떤 사실이 끝내 분명해지지 않을 때 그 불이익을 누가 지는지를 가리는 것이다. 집주인이 두 요건을 입증하지 못하면 손해배상 책임을 벗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조항의 '정당한 사유'에 관해 대법원이 판단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mail protected] 김동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