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본초여담] 종기는 외치법(外治法)만큼이나 내치법(內治法)도 중요하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명나라 때 강서성 남창(南昌)에 왕대국(王大國)이라는 의원이 있었다. 왕대국은 본래 담병(痰病)을 오래 앓았는데, 어느 날 뛰어난 의술을 지닌 기인(奇人)을 만나 병을 고쳤다. 이에 감복한 왕대국은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의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스승은 왕대국에게 <황제내경>과 <소문> 등의 의서를 가르치고 자신이 간직한 비방까지 전수했다. 왕대국은 밤낮으로 의학을 연구했다. 어느 날 스승이 그동안 배운 의술을 물었더니 왕대국은 막힘없이 대답했고, 그 내용 또한 병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었다.
스승은 크게 놀라며 말했다. "내가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자네처럼 총명하고 뛰어난 사람은 보지 못했네. 더욱 정진하게. 머지않아 의성(醫聖)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질 것이네."
이후 왕대국은 본격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두씨(杜氏)에게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이는 오래전부터 목 주변에 멍울이 생기는 나력(瘰癧, 목 주변 림프절에 생기는 만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여러 의원을 찾아다니며 약을 먹였지만 좀처럼 낫지 않았다. 멍울은 줄어들지 않았고 부모의 걱정은 날로 커져만 갔다.
왕대국은 아이를 진찰하고서 해조(海藻, 미역)와 곤포(昆布, 다시마), 하고초, 패모, 현삼 등으로 환약을 만들었다. 이는 담을 삭이고 단단한 멍울을 풀어주는 약재들이다. 그리고 부모에게 환약 두 개를 전했다.
"이것을 먹이시오."
두씨는 고작 두 알의 환약으로 오랜 병을 고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기에 아이에게 약을 먹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록에 따르면 아이는 그날로 병이 나았다. 이를 지켜본 마을 사람들은 왕대국의 의술을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칭송했다.
왕대국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던 무렵, 남창에서 형사 사건과 재판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지방 관리로 일하던 호신삼(胡愼三)이 심한 종기를 앓게 되었다.
호신삼의 왼발에 생긴 종기는 갈수록 깊어져 마침내 발바닥까지 뚫릴 지경이었다. 종기에서는 진물이 흘렀고 통증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미 여러 차례 의원을 바꿔가며 치료받았지만 나날이 심해졌다. 의원들은 종기가 난 부위에 여러 가지 고약을 붙이고 상처를 치료했다. 하지만 발은 좀처럼 낫지 않았다.
마침내 호신삼은 왕대국을 불러 진찰을 받았다. 왕대국은 종기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지금 붙이고 있는 약부터 모두 떼어내십시오."
호신삼은 의아했다. "종기에 붙인 약을 떼어내라니, 그러면 무엇으로 치료하겠다는 것이오?"
"이제부터는 이 탕약만 드십시오."
왕대국은 금은화, 조각자, 당귀미, 황기, 작약, 유향, 몰약, 천화분, 패모, 백지, 진피 등이 들어간 처방을 했다. 호신삼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종기는 발에 나 있고, 상처는 깊게 파여 있는데, 어찌 먹는 약만으로 치료한다는 말인가.
"탕약을 먹는다고 어찌 종기가 아물고 상처에 새살이 돋겠소?" 왕대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보름만 시간을 주십시오. 반드시 낫게 해드리겠습니다."
호신삼은 반신반의했지만 왕대국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결국 고약을 떼어내고 그가 처방한 탕약만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좀처럼 아물지 않던 상처가 조금씩 오므라들기 시작한 것이다.
호신삼은 크게 기뻐했다. "참으로 신기하구려! 먹는 약으로도 종기가 아물 수 있단 말이오?"
치료는 계속되었고, 치료가 시작되어 스무날 정도 지나자 깊게 파였던 상처에 살이 차올라 거의 다 아물었다. 왕대국이 처음 약속했던 보름보다는 며칠이 더 걸렸지만, 오랫동안 여러 의원이 치료하지 못했던 종기가 마침내 나은 것이다.
호신삼은 왕대국의 의술에 감탄하여 네 글자를 새긴 편액을 만들어 주었다. '기초방외(技超方外)'. 의술이 일반적인 방법과 통념을 뛰어넘었다는 의미였다.
한의학에서는 종기나 부스럼을 치료할 때 상처에 직접 약을 바르는 외치법(外治法)뿐 아니라 약을 복용하여 몸 안에서 병의 원인을 다스리는 내치법(內治法)도 중요하게 여겼다.
내치법으로는 종기나 옹저를 치료할 때 병의 진행 단계에 따라 소법(消法), 탁법(托法), 보법(補法)을 구분했다. 소법은 종기를 흩어 없애는 방법이고, 탁법은 몸속에 뭉친 독과 고름을 밖으로 밀어내는 방법이며, 보법은 부족해진 기혈을 보충하여 상처가 아물도록 돕는 방법이다.
구체적으로 종기가 처음 생겼을 때는 뭉친 것을 풀고 부기를 가라앉히는 소종산결(消腫散結)과 열독을 식히고 제거하는 청열해독(淸熱解毒)을 중시했다. 고름이 형성된 뒤에는 안에 머문 독을 밖으로 밀어내는 탁독외출(托毒外出)과 고름이 터져 배출되도록 돕는 투농배농(透膿排膿)을 활용했다. 종기가 터진 뒤에도 상처가 잘 아물지 않으면 기와 혈을 보충하는 보익기혈(補益氣血)과 새살이 돋고 상처가 아물도록 하는 생기렴창(生肌斂瘡)을 중요하게 여겼다.
<의술명류열전(醫術名流列傳)> 明. 王大國. 按《江西通志》:王大國, 字邑郊, 南昌人. 嘗患痰疾, 得異人而愈, 遂師事焉. 授《素問》ㆍ《內經》等書, 及秘藏諸方, 無不殫心研究. 一日, 異人叩其所學, 無不切中肯綮, 異人驚之. 會別而去, 曰:"勉之. 不日當以醫聖名世. 吾經行天下, 未見有如子之警異絕人者." 同里杜氏有子年幼, 久患瘰癧, 服藥無效. 國至, 投以二丸, 即日平復, 見者驚以爲神. 南昌司理胡慎三左足患癰, 直穿腳底, 醫已數易, 日甚一日, 痛楚幾絕. 國至, 命急去敷藥, 止服湯劑. 司理曰:"湯劑豈能生肌耶?" 國曰:"願限半月, 全愈." 服至三四日, 瘡口漸合, 司理大喜. 才二十日, 肌肉已滿, 如其所言, 給技超方外四字匾旌之. 國仁心神術, 一以濟人利物爲念, 手中所活, 何啻萬人? 子開能世其學. (명나라. 왕대국. 《강서통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왕대국은 자가 읍교이며 남창 사람이다. 일찍이 담병을 앓다가 이인을 만나서 나은 후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소문》, 《내경》 등의 의서와 여러 비장의 처방들을 전수받으며 전심으로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루는 이인이 그의 배움을 점검했는데, 핵심을 정확히 맞히지 못함이 없으므로 이인은 놀라워했다. 작별하고 떠날 때는 "매진하게. 오래지 않아 세상에 의성으로 이름날 걸세. 나는 천하를 두루 다녔지만 자네처럼 총명이 특출한 사람은 보지 못했네."라고 했다. 같은 마을의 두씨에게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나력을 오래 앓으면서 약을 복용해도 효과가 없었다. 왕대국이 와서 환약 두 알을 투여하자 그날로 다 나으니, 보는 사람들은 놀라서 신처럼 여겼다. 남창의 사리인 호신삼은 왼발에 옹이 생겨 발바닥까지 곧장 뚫렸는데, 이미 의사를 몇 번 바꾸었으나 나날이 더 심해져서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왕대국이 오더니 급히 부약을 떼버리고 탕제만 복용하라고 했다. 사리가 "탕제로 어찌 새살이 돋도록 할 수 있겠는가?" 하자 왕대국은 "보름만 시간을 주시면 다 나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복용한 지 3~4일이 되자 터진 곳이 점점 아물어서 사리는 매우 기뻐했다. 겨우 20일 만에 살이 이미 차올라 그의 말대로 되었으므로 '기초방외', 즉 기술이 통념을 초월한다는 네 글자의 편액을 주어 정표했다. 왕대국은 어진 마음과 신묘한 의술로 오로지 인명을 구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데에만 마음을 두었으니, 그 손으로 살린 사람이 어찌 만 명뿐이었겠는가? 아들 개가 그의 의학을 잘 계승했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