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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100조 삼성전자, 사람을 바꿨다면 평가 룰도 엎어라 [김문경의 리더십테크](30)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2024년 10월 8일,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이끄는 전영현 부회장은 3분기 잠정실적 발표 직후 이례적인 사과문을 냈다. 영업이익 9조 1천억 원이라는 성적표가 시장의 기대치에 크게 미치지 못하자, 경영진이 먼저 책임을 통감하며 고개를 숙인 것이다. 당시 그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성의 마인드를 과감히 버리고, 초심의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꼭 2년이 흐른 올해 10월, 삼성전자는 분기 영업이익 100조 원 고지를 돌파하며 국내 기업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뼈아픈 사과 이후 수성의 위기를 넘어 다시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그 사이 조직의 진용도 크게 바뀌었다. 대규모 임원 인사를 통해 3040 세대의 젊은 피를 수혈했고, 인공지능과 반도체 분야의 기술 인재들을 전면에 세웠다. 연공서열보다 성과를, 쾌적한 관리보다 치열한 현장을 우선하겠다는 강력한 쇄신 메시지였다. 그러나 경영의 최전선에서 사람을 바꾸는 것은 절반의 쇄신에 불과하다. 새로 발탁된 리더들이 무엇으로 평가받는지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그들 역시 과거의 리더들처럼 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기업의 리더 평가는 여전히 과거 안정적 성장기의 낡은 틀에 갇혀 있다. 연초에 세운 핵심성과지표를 얼마나 오차 없이 달성했는지, 리스크와 실수를 얼마나 완벽하게 통제했는지가 1등 리더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즉, 도전하여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사람보다,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무결점의 성적표를 제출한 사람이 더 높은 고과를 받는 구조다. 이 룰 안에서 리더의 선택은 뻔하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혁신적 시도는 기획 단계부터 배제되고, 연말까지 100% 달성이 보장된 안전하고 낮은 목표만 남게 된다. 리더의 보수적인 수성 마인드는 개인의 성향 탓이 아니라, 회사의 평가표가 길러낸 필연적 결과다.

매출 100조 삼성전자, 사람을 바꿨다면 평가 룰도 엎어라 [김문경의 리더십테크](30)

미국 경영학자 스티븐 커(Steven Kerr)는 1975년 발표한 고전 'B를 바라면서 A를 보상하는 어리석음'에서 이 뼈아픈 모순을 정면으로 짚어냈다. 조직은 입으로는 혁신을 외치면서 정작 평가 시스템은 무결점과 현상 유지에 보상을 내린다. 구성원들은 회사의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자신의 연봉을 결정짓는 보상 지표를 따르기 마련이다. 측정하기 쉬운 객관적 숫자에만 집착하다 보니 당장의 달성률은 깔끔하게 기록되지만, 정작 혁신을 위한 대담한 시도와 실패를 통한 소중한 학습은 숫자로 잡히지 않아 평가표에서 가장 먼저 지워진다.

여기서 우리는 낡은 통념 하나를 뒤집어야 한다. 흔히 평가 룰의 혁신은 기업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을 때 단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실상은 그 반대다. 생존이 시급한 위기 상황에서는 당장의 숫자가 급해 실패를 용인할 심리적, 재무적 여유가 없다. 반대로 시장이 호황일 때는 호실적의 숫자가 리더의 진짜 실력인지, 그저 시장의 운에 편승한 결과인지 가려내기 어렵다.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이 상승장을 탈 때는 누가 조직을 이끌어도 목표 달성률이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지킬 것이 가장 많은 최대 실적의 순간이야말로 수성 마인드가 가장 쉽게 되살아나는 때이며, 동시에 평가의 룰을 뒤엎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골든타임이다.

물론 반론도 존재한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이 최근 저성과자 정리를 강화하며 평가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지 않으냐는 지적이다. 이 반론은 타당하다. 실패를 용인하라는 것이 저성과를 방치하라는 의미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핵심은 실패의 질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데 있다. 쉬운 목표를 게으름으로 놓친 실패와 달성하기 어려운 혁신적 목표에 과감히 도전했다가 마주한 실패는 결코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다. 앞의 실패에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뒤의 실패는 조직의 자산이 되는 학습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똑같은 감점으로 처리하는 일차원적인 평가표가 문제의 본질이다.

다가오는 연말 평가와 내년도 목표 설정을 앞두고 경영진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내년 목표를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목표와 혁신을 위한 도전 목표로 엄격히 분리하자. 기본 목표는 달성률로 평가하되, 도전 목표는 시도의 속도와 대담함,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긴 학습 데이터로 평가해야 한다.

둘째, 올해 리더들의 실적에서 업황에 의한 시장 효과와 리더 본인의 독립적 기여를 분리해서 바라보자. 파도가 만들어낸 거품을 걷어내야 리더가 진정으로 만든 차이가 보인다.

셋째,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배제했던 부서 간 협업 이끌기를 핵심 평가 항목에 명시하자. 지표에 없으면 조직은 결코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위기의 진흙탕을 구르라며 발탁한 새로운 야전사령관들에게 과거의 낡은 평가 지도를 쥐여주고 신대륙을 개척하라고 등 떠밀 수는 없다. 2년 전, 수성을 버리고 도전을 택하겠다던 뼈아픈 반성은 강당에서 구호로 외칠 때가 아니라 평가표의 항목으로 적힐 때 비로소 완성된다.

분기 영업이익 100조 원이라는 거대한 성과가 과거를 방어하는 핑계가 될지, 아니면 미래를 향한 대담한 도전의 밑천이 될지. 그 해답은 지금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그 평가표 안에 있다.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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